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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위헌성 판단 앞둔 ‘뜨거운 감자’ 낙태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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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위헌성 판단 앞둔 ‘뜨거운 감자’ 낙태죄

입력
2019.02.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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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낙태죄는 위헌” 두번째 헌법소원 제기 

 작년 공개변론 열었지만 ‘개점휴업’사태로 해넘겨 

 “가장 시급한 현안”..이르면 3월 내 선고 전망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재판부가 새로 구성되면 낙태죄 사건을 가능한 조속히 평의해 재판하도록 노력하겠다”

작년 9월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낙태죄 위헌 여부를 가리는 심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에 이 같이 답했다. 유 소장의 공언과 달리 진행은 좀 느렸다. 신임 재판관 3명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가 미뤄지며 한달 넘게 헌재가 ‘개점휴업’한 탓에, 낙태죄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낙태죄의 위헌성 여부를 결정하는 헌재 결정은 올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올해 헌재가 내놓을 결정 중 단연 최고의 파장이 예상되는 이슈로 주목 받고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정면 충돌하는 낙태 문제는 사형ㆍ안락사 문제와 등과 함께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오는 법조계 현안이기도 하다.

헌재 재판관 교체 문제가 낙태죄 결론이 나오는 시점을 좌우할 큰 변수다. 4월18일 두 명의 헌법재판관(서기석ㆍ조용호) 임기가 끝나는데, 재판관이 교체되면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선고가 지연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작년 5월 공개변론을 마친 데다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공감대가 큰 만큼, 재판관이 바뀌기 전에 결정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매달 넷째 주 목요일 심판선고가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2월이나 3월 중 낙태죄에 대한 헌재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실상 사문화..거세지는 폐지여론 

자연 분만기 이전에 인위적으로 태아를 모체 밖으로 배출하는 것을 일컫는 낙태(落胎)는 19세기 이후 거의 모든 나라에서 형사처벌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21세기로 넘어오며 제한된 낙태나 혹은 전면적 낙태 허용을 택하는 나라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다수 국가들은 12~14주 등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요청에 따라 사유를 묻지 않고 허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독일처럼 임신 14주 이전에는 수술 3일 전까지 ‘임신갈등 상담소’의 상담확인서를 제출해야 하는 사회적 규제장치를 두는 나라도 있다.

한국은 여전히 전면 규제를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1953년 제정된 형법 269조에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70조는 “의사 등이 부녀 촉탁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과 남성의 공동 책임이 따르는 일임에도, 법조항상 낙태죄는 여성과 의사만 처벌하는 차별적 요소를 일부 지니고 있다.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점도 낙태죄 폐지 또는 위헌론을 뒷받침하는 논리다. 1970년대 ‘모자보건법’이 제정되며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등 예외 사유를 허용하며 전면 허용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복지부가 2011년에 추정한 연간 임신중절 건수는 17만 건이지만, 2017년 1심 판결이 난 낙태죄 14건 중 징역형은 1건에 불과했다.

이런 까닭에 낙태죄를 아예 폐지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할 시점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23만여명이 낙태죄 폐지에 서명하자 조국 민정수석은 “이제 태아 대 여성의 대립 구도를 넘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작년 9월29일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형법 269조(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269명의 참가자들이 흰색 피켓을 들고 숫자 '269'를 붉은 천으로 가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작년 9월29일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형법 269조(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을 촉구하는 269명의 참가자들이 흰색 피켓을 들고 숫자 '269'를 붉은 천으로 가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태아 생명권” vs “여성 자기결정권” 

헌재는 이미 2012년에 낙태죄 처벌규정을 ‘합헌’으로 결정한 적이 있다. 당시 조대현 재판관이 퇴임하고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여서 8명이 선고를 했는데, 위헌 의견과 합헌 의견이 4대 4로 맞섰다. 하지만 위헌 정족수인 6명이 안돼 결론은 합헌으로 났다.

당시 김종대ㆍ민형기ㆍ박한철ㆍ이정미 등 4명의 재판관은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능력을 갖췄는지를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며 합헌 의견을 냈다. 태아는 그 자체로 임부와는 별개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반대의견을 낸 이강국 헌재소장과 이동흡ㆍ목영준 재판관은 태아가 독자적인 생명능력을 갖추는 임신 24주 이후부터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 이전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줄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다만 낙태시술로 인한 합병증 우려나 사망률이 올라간다는 이유로 초기인 12주까지만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봤다.

이번 사건은 2017년 2월 산부인과 의사 A씨가 69회에 걸쳐 낙태수술을 한 혐의로 기소된 후 형법 제269조 1항과 270조 1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작년 5월 열린 헌재가 주최한 공개변론에서 A씨 측은 “태아의 생명권보다 임부 자신의 결정권과 건강권 등이 더 존중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여성가족부도 “낙태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지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반면 낙태죄 합헌 측에 선 법무부 대리인단은 “의사의 기본 임무는 생명 보호”라며 의료종사자의 낙태시술행위 처벌을 존속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법무부는 이 과정에서 임신중절을 하려는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적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가 작년 9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유남석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가 작년 9월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위헌 의견 밝힌 재판관 늘어..2ㆍ3월 선고 전망도 

2012년 결정 이후 7년이 지난 헌재 분위기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2012년 결정에 참여한 재판관들은 모두 퇴임했고, 작년 한 해에만 6명의 재판관이 새로 임기를 시작했다. 신임 재판관들 중 상당수는 낙태죄 폐지에 긍정적인 견해를 밝힌 상태다.

유남석 헌재소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낙태죄 처벌과 관련해 “임신 초기에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이나 의사 등 전문가를 거쳐서 허용하는 방안 등 적극적으로 입법론적 고려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은애 재판관도 “현재의 낙태 허용 범위가 지나치게 좁은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도보수로 평가 받는 이영진 재판관도 “낙태죄 처벌을 완화해야 한다”며 위헌 의사를 분명히 했다. 다만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기영ㆍ이석태 재판관과 자유한국당 추천을 받은 이종석 재판관은 특별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이런 헌재 내부 변수와 별도로 7년 만에 낙태죄 폐지 쪽 목소리가 좀 더 높아지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옹호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헌재가 결론을 바꿀 개연성은 꽤 높아진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에는 위헌 정족수(6명)를 넘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헌재 관계자는 “낙태죄는 올해 헌재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현안”이라며 “상반기 중 결론을 내려면 4월에 두 재판관이 떠나기 전에 선고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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