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자신의 나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이런 황당한 상황이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발생하곤 한다. 더 흥미로운 건, 스스로가 나이를 잘못 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나는 최근에도 환갑이 된 분의 나이를 수정해서 한 살 낮춰 준 적이 있다. 조금만 늦었으면 환갑을 두 번 하는 해프닝이 발생했을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나이를 먹는 기준이 우리의 상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나이는 음력 설을 기준으로 한 살 더 먹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이를 먹는 기준은 아이러니하게도 음력 설이 아니라, 봄의 시작인 ‘입춘’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음력을 사용했다. 달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은 달의 차고 기우는 모습을 통해, 한 달의 변화와 날짜를 요량해 보기에 좋다. 그러나 음력만으로는 계절을 알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해서 음력을 기반으로 양력을 섞어 사용하게 되는데, 이런 양력 주기가 바로 입춘으로 시작해서 대한으로 끝나는 24절기다. 즉 24절기는 양력이라는 말씀. 이렇게 음력을 기준으로 양력을 섞어 쓰는 방식을 태음태양력이라고 한다.

24절기는 양력이기 때문에, 오늘날 양력 달력을 사용하는 상황에서는 붙박여 움직이지 않는다. 설이나 추석이 널뛰기하는 것과는 다른 양상인 셈이다. 해서 입춘은 언제나 양력 2월 4일이다. 즉 2월 4일을 기준으로 띠가 바뀌고, 우리는 한 살 더 먹게 된다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띠가 바뀌는 것은 음력이 아니라 양력인 셈이다.

올해 설은 입춘보다 하루 늦은 2월 5일이다. 이런 경우 기해년의 황금돼지해는 설날보다 하루 빠른 2월 4일부터 시작된다. 즉 설 전에 태어났어도 2월 4일생은 돼지띠가 되는 것이다. 올해는 입춘과 설날의 차이가 크지 않지만, 윤달이 들거나 할 때는 양자 사이에 15일에서 크게는 한 달 정도까지 벌어진다. 이럴 때 태어난 분들은 나이를 헤아림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해서 나는 농담 삼아, ‘헷갈리면 입춘과 설 근처에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입춘을 기준으로 띠가 바뀌는 것일까? 그것은 과거에는 왕조에 따라서 한 해를 시작하는 기준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춘추전국시대나 ‘주역’으로 익숙한 중국 고대 왕조 주(周)나라는 동지가 설날이었다. 때문에 오늘날까지 동지를 작은 설(亞歲)이라 하고, 동지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속설이 유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 역사서는 주나라 이전에도 은(殷)나라와 하(夏)나라의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이 중 하나라는 입춘을 기점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즉 입춘에 해가 바뀌는 풍속은 전설적인 왕조인 하나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근거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공자는 입춘설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이 오늘날까지 띠가 입춘에 바꾸는 이유가 된다.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래한 것은 물경 2,000년이나 된다. 때문에 불교는 동아시아의 전통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찰에서는 입춘이 되면, 삼재(三災) 즉 안 좋은 재앙을 물리치는 벽사의식을 단행한다. 이걸 삼재풀이라고 하는데, 입춘이 한 해의 시작이니 새해 벽두에 모든 삿된 기운을 물리치겠다는 의미다.

민가에서는 입춘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입춘첩(立春帖)을 대문에 붙이곤 한다. ‘봄이 바로 서 크게 길하니, 양기가 굳건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가득하다.’는 의미다. 새로운 시작을 맞아 좋은 일만 깃들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경사스러운 행복을 바라는 것과 삿된 것을 물리치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움직이는 상보적 관계이다. 이런 점에서도 불교와 우리의 전통문화는 깊이 조화되어 있다고 하겠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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