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사실적 폭력에 공감하면서
교육 개혁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
시험이 아닌 ‘경쟁의 공정성’이 중요

탐욕스러운 교육현장의 모습과 함께 탐욕이 파탄을 일으키는 모습도 보여준 드라마 ‘SKY캐슬’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학생부종합과 수능을 둘러싼 논쟁 등에 새롭게 불이 붙긴 했지만, 감히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까지 점화되지는 않는 분위기다. 사람들은 드라마가 보여주는 잔혹함에 많이 공감하면서도, 감히 개혁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상한’ 분위기 아닌가? 드라마가 현실적이어서,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런가? 어떻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노무현 정부 때 시민단체에서는 과열 경쟁을 부추기는 입시를 폐지하고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도입하자는 논의가 있었고, 서울대를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로 합치자는 논의도 있었다. 수능과 학종 중 어느 것이 공정한가를 따지는 요즘 논의와 비교하면, 개혁 열망은 훨씬 뜨거웠다. 그러나 정부는 교육개혁을 시작도 하지 못했다. 이유는 여럿이다. 단임 정부가 실행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개혁이었을 것이고, 정부도 교육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다룰 능력이 없었다. 또 입시제도 개혁에 보수층이 쉽게 동의할 리도 없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와 함께, 중요한 사회적 요인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당시에는 일자리 축소나 실업의 공포가 그리 크지 않았다. 초반에만 해도 ‘역사에서 처음으로 중국보다 잘하고 있다’는 낙관적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정말 잠깐이었다. 몇 년 사이에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할 수 없는 시대가 들이닥쳤고, 글로벌 경쟁에 대한 압박도 배가되었다. 이 공포와 압박의 쓰나미는 공정한 교육에 대한 논의를 한 번에 휩쓸어버렸다. 그나마 여유가 있을 땐 개혁을 논의할 수 있었지만, 공포와 압박이 사회를 압도하자 그것조차 불가능해진 것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 힘든 상황에선, 대학입시를 공정하게 만드는 것은 중요할지라도 한가하게 보였다.

경쟁이 더 치열해진 상황에서 오히려 서열화와 등급화의 압박은 더 거세졌다. 이전에는 경쟁적 입시를 피하고 프랑스나 독일 방식으로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도입하면, 뭔가 되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었다. 그나마 일자리가 충분히 있을 때는 공정한 공교육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일자리가 없어지고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하자, 그런 기대조차 사치처럼 여겨진 것이다.

그 이후 십 년 넘는 동안 교육현장에 어떤 의미 있는 개혁도 없었다. 기껏 학생부종합과 입학사정관이 도입되었고, 수시와 정시의 비율을 찔끔 바꾸는 미봉책만 있었다. 현 정부도 교육에 대해선 아무 대책이 없다. 이 와중에서 학종, 정시와 수능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공정한가라는 말싸움이 때때로 벌어지지만, 실제로 이 싸움은 이차적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입시 제도를 바꿔보았자, 지위 경쟁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편법이 앞서 간다. 일자리가 축소될 뿐 아니라 소멸하는 상황에서, 교육경쟁은 지독한 평가의 등급화를 동반하면서 폭력적 성격을 띤다. 과거 어느 정도 호소력을 가졌던 ‘공교육 정상화’란 말도 어느 새 사라져버렸다. 교육은 부인할 수 없는 전쟁의 연장이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저 과거의 개혁을 다시 입에 올리는 것은 진지한 접근이 아닐 것이다. 한때 개혁의 주체를 자임했던 ‘전교조’도 의미 있는 역할을 못 하는 엄혹한 상황 아닌가. 학생과 대학을 평가하는 등급화 방식이 지독하다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비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지위 경쟁이 치열한 사회 시스템 안에서는 그나마 엄격한 등급화를 통해 공정성이 유지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경쟁 시스템은 더러운데, 그 수단인 시험은 깨끗하다? 여기서 공정성이라는 말은 치명적으로 왜곡된다. 폭력적 경쟁은 공정하지 않고 정당성도 상실했는데, 그 절차만 공정하면 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경쟁 시스템이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이 상황에서 교육현장은 막장이 되어버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는다. 차라리 폭력적인 드라마를 보면서 웃거나 욕을 한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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