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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참안도 조건부 참여안도 잇달아 부결… ‘결정장애’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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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참안도 조건부 참여안도 잇달아 부결… ‘결정장애’ 민주노총

입력
2019.01.29 00:17
수정
2019.01.29 00:4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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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28일 오후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홀에서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경사노위 참여 안건들이 모두 부결된 가운데 김명환(오른쪽)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홍인기 기자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28일 오후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홀에서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경사노위 참여 안건들이 모두 부결된 가운데 김명환(오른쪽)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홍인기 기자

 대의원 대회 오후 2시에 시작 

 3개 수정안 모두 제시했으나…과반 못 넘기자 집행부 좌절 

 오후 10시30분 집행부 원안인 

 ‘경사노위 참여’안 싸고 설전도 

‘결정 장애의 끝, 또는 고뇌에 찬 고차원적 결론’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에서 28일 열린 민주노총의 제 67차 대의원대회는 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대의원들은 경사노위 참여 반대안도, 찬성안도 잇달아 부결시키며 대회를 이끌어간 집행부를 좌절케 했다.

이날 오후 2시 시작된 대의원 대회가 오후 10시30분을 넘어서도 끝나지 않고 지리멸렬하게 이어지자 대의원 좌석에서는 “그만 좀 하자” “집에 가자”는 불평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대의원 대회는 결국 하루를 넘긴 29일 0시 10분께 산회됐다.

집행부가 수정안을 세 개로 정리하고, 각 수정안에 대한 찬성 반대 입장을 각각 2개씩만 듣기로 교통 정리를 하면서 표결은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집행부는 당초 조건 없는 경사노위 참여를 제안했다. 일부 경사노위 참여 반대파가 의사진행 발언 기회를 연속적으로 얻어 회의를 지연시키려는 필리버스터 전략을 펴기도 했으나 사회자 역할을 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과감하게 이를 끊었다.

대의원들 내 표결에 붙여진 수정안은 각각 ①경사노위에 조건 없이 불참하고 즉각적인 대정부 투쟁 돌입(좌파 의견그룹안) ②△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악 철회 △최저임금제도(이원화 개편안) 개악 철회 △노조법 개악 철회 및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정부 비준 등을 정부가 먼저 수용하는 조건으로 경사노위에 참여(금속노조안) ③경사노위에 일단 참여하되 탄력근로제와 최저임금제 등 노동법 개악안이 국회에서 강행처리 되면 경사노위 즉각 탈퇴(8개 산별노조 위원장안)이다. ①, ②는 집행부 원안(경사노위 참여)에 대한 사실상 반대안, 즉 경사노위 불참안으로 평가되며 ③은 원안에 가까운 온건한 수정안으로 분류된다.

①안은 대의원 재석 958명 중 찬성 331명(34.6%ㆍ50% 넘어야 가결)으로 부결됐다. 가장 강경 반대 입장이 부결된 터라, 찬성파의 기대감이 조금씩 커졌다. ②는 민주노총 내 최대 산별인 금속노조가 낸 안이었지만 표결에 붙이자 과반에 크게 못 미친 상태로 부결됐다. 재석 936명 중 찬성 362명(38.7%)에 그쳤다. 그러자 장내가 술렁였다. 경사노위 참여 반대안인 ①, ②에 대한 부결은 곧 경사노위 참여 찬성 여론이 우세한 것처럼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③안을 막상 표결에 붙이자 재석 912명 중 찬성 402명(44.1%)으로 허무하게 부결됐다. 부결 사실이 확인되자 김명환 위원장의 마이크에서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장내 대의원들도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를 두고 술렁였다.

이후 20분간 정회를 거친 뒤 10시30분 대회가 재개됐고, 당초 집행부가 내놓은 원안(경사노위 참여)에 대해 표결을 붙여야 하냐를 두고 자정이 가깝도록 대의원들 간 설전이 벌여졌다. 논쟁은 김 위원장 이날 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결정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마무리됐다. 김 위원장 스스로가 ③안을 사실상 집행부 안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던 만큼, 원안을 또 표결에 붙이는 건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회에 앞서 경사노위의 참여 반대를 주장하는 조합원들은 열띤 선전전을 펼쳤다. 오후 1시30분 경사노위 참가에 반대하는 활동가 수십명은 대회장 앞에서 ‘경사노위 참가 말고 투쟁 결의로’라는 피켓을 든 채 대의원들에게 경사노위 참여 반대 목소리를 알렸다. 대회의장 복도에는 경사노위 참여 반대 의견그룹이 붙인 대자보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경사노위에 들어가면 개악 합의 강요 받을 것이다. (김명환 위원장이 지금까지) 노동개악 의지 표명하는 문재인에 악수만 해 준 꼴이다’(노동자연대), ‘경사노위는 바로 문재인 정부의 반노동, 친재벌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1998년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참여해서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을 합의했던 오류를 또다시 반복해선 안 된다’(현장투쟁 복원과 계급적 연대 실현을 위한 전국노동자 모임) 등의 내용이었다. 반대파 활동가들은 대의원 접수를 위해 줄을 서있는 대의원들에게도 다가가 경사노위 참여 반대를 위해 서명해 줄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이들은 경사노위 참여에 반대하는 내용으로 민주노총 대의원 160명 등의 서명을 받은 성명서를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대회의장 내부에도 ‘경사노위 참여 결정은 노동개악 합의입니다’(노동당 등)라고 쓰인 붉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대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이광오 공공연구노조 사무처장은 “평소 소신은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면서도 “최근 공개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노동개악안이 담긴 공익위원안이 나오고, 한국노총마저 사회적 대화에 불참하기로 한 상황이어서 불참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말했다.

반대파만큼 공공연히 입장을 드러내진 않지만 개별적으로 의견을 물었을 때 경사노위 참여를 지지한다고 응답한 대의원들도 적지 않았다. 이날 대회 참석을 위해 상경했다는 이경환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공단지부 대전충남본부장은 “건강보험 정책과 관련한 의사 결정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하는데 의사 단체, 약사 단체, 근로자대표, 사용자대표 등 이해관계가 서로 극명히 엇갈리는 사람들이 모여서도 대화를 통해 생산적인 결과물을 내놓기도 한다”면서 “경사노위도 건정심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사노위에 참여해 정부와 협의 창구를 가져야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경신 건설산업연맹 부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역량이 과거보다 커졌기 때문에 경사노위에 참석한다고 해서 투쟁을 못하는 것이 아니지 않냐”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경사노위에 참석하면 노동개악에 민주노총이 들러리만 서게 될 것’이라는 반대파 주장에 대해 김 부위원장은 “경사노위에 불참한다고 들러리가 안 되는 건 아니다”라며 “오히려 경사노위 안에서 공개적으로 할 말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날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 중단 발표를 한 것에 대해서는 “경사노위에 불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산하 의제별 위원회 두 개에 대한 참여 중단을 선언한 것일 뿐”이라며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와는 다른 문제로 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 지부의 최경진 조합원은 “민주노총이 과거와 달리 노동 이슈뿐 아니라 사회안전망 강화, 사회대개혁 등 여러 복잡한 사회 현안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전략 중 하나로 경사노위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안건 통과가 불발되면서 경사노위 참여 찬성자들의 희망은 꺾이게 됐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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