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48> 김대중의 ‘김대중 자서전’
1987년 대선에서 유세도중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연합뉴스

지식사회와 정치사회는 뗄 수 없는 관계를 갖는다. 특히 정치, 경제, 사회를 다루는 사회과학과 국가의 최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정부, 의회는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든 지식인들은 정치가들에게, 동시에 정치가들은 지식인들에게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 지식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치가들로는 이승만, 김구, 여운형, 박헌영,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현대사를 이끌어온 이 정치가들 가운데 이 기획에선 앞서 박정희와 노무현을 다룬 바 있다. 이제 김대중을 살펴보려고 한다.

김대중은 흔히 박정희의 라이벌로 지목된다.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와 겨뤘고 이후 유신체제에 맞서 투쟁했다. 또, 김대중은 김영삼과 함께 민주화의 상징을 이뤘다. 1970년대부터 두 정치가는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연대했다. 김대중은 김영삼에 이어 1997년 대선에서 당선됐다.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재임한 5년의 김대중 시대는 19년의 박정희 시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짧았다. 그러나 그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시해 작지 않은 업적을 남겼다. 광복 이후 경제 구조에 주목할 때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61년 체제’와 ‘97년 체제’였다. 97년 체제가 지속되는 현재, 김대중 시대가 미친 다각적인 영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1987년 12월 3일 대통령 선거 유세 연설하는 평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 연합뉴스
◇김대중의 삶과 정치

김대중은 1924년 전남 무안(현 신안)에서 태어났다. 식민지 시대에 목포상고를 졸업한 다음 청년사업가로 활동했다. 1945년 광복 직후에는 여운형이 이끄는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다. 1950년대 중반까지 해운업에 종사했고, 1954년 민의원 선거에 목표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김대중은 ‘사상계’에 ‘한국 노동운동의 진로’를 발표했고, 민주당에 입당해 정치가의 길을 걸었다. 1961년 강원도 인제에서 민의원 보궐선거로 출마해 당선됐지만, 5.16 쿠데타로 국회의원 선서조차 하지 못했다. 민주당 재건에 참여하면서 1963년 총선에 목포에서 출마해 당선됐다. 1967년 총선에서 다시 당선됐고, 1970년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됐다.

1971년 대선은 김대중의 정치 인생에서 첫 번째 분수령이었다. 그는 대통령 후보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미·소·중·일 4대국 보장, 비정치적 남북 교류 허용, 평화통일론, 예비군 폐지’ 등을 제시해 선거를 뜨겁게 달궜다. 46%를 득표함으로써 선전했지만 낙선했다. 1971년 총선에서 다시 당선됐고, 유신 선포 후에는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일본 도쿄 시내 그랜드호텔에서 피랍된 지 5일 9시간 만인 8월 13일 오후 서울 동교동 자택에 돌아 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70년대부터 1987년까지 김대중은 시련과 저항의 나날을 보냈다. 1973년 도쿄 납치 살해 미수 사건이 일어난 후 정치 활동을 금지 당하고 옥고를 치렀다. 1979년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후 정치 활동을 재개했지만, 1980년 내란 음모 사건으로 다시 수감됐고, 1982년 신병 치료 차 미국으로 출국했다. 두 번째 망명 생활이었다. 이런 시련 속에서도 그는 군사정부에 당당히 맞서 저항했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 시대가 열린 다음 12월에 치러진 대선에 김대중은 출마했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두 번째 분수령이었다. 그는 낙선했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평화민주당이 1988년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부상하면서 그는 재기했다. 1992년 대선에서 세 번째 고배를 들었던 그는 1997년 대선에서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후보 단일화를 이뤄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세 번째 분수령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구술을 바탕으로 쓴 자서전. 생전에 본인이 직접 원고를 고쳤고, 2009년 8월 18일 서거 이후에는 부인 이희호 여사가 검토했다. 삼인 출판사 제공.
◇김대중 시대, 어떻게 볼 것인가

김대중의 삶과 정치를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저작은 ‘김대중 자서전’이다. 이 책은 2010년 2권으로 나왔다. 김대중의 구술을 바탕으로 그의 저작물과 각종 자료를 참고로 해 김택근이 집필했다. 물론 본인이 원고를 직접 고쳤고, 세상을 떠난 후 부인인 이희호가 원고를 최종 검토했다.

김대중이 집권했던 김대중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김대중은 자신의 정부를 ‘국민의 정부’라 명명했다. 그의 국정철학은 국민의 정부가 국정이념으로 내세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에 집약돼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방법론은 ‘서생적 문제 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이론과 현실을 적절히 결합하려는 ‘규범적 현실주의’가 김대중의 일관된 정치철학이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시대는 ‘고난의 시대’였다. 개발 시대의 종언을 가져온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동시에, 김대중 시대는 ‘역설의 시대’였다. 신자유주의가 절정을 이룬 세계사적 구속 아래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내고 확장해야 하는 과제 또한 안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 아래 김대중 정부는 최선의 정치를 모색했고 추진했다. 그 결과가 4대부문 구조조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의약분업 실시,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으로 현실화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2월 25일 국회에서 제 15대 대통령 취임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정부라고 해서 그늘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김대중 시대를 통해 우리 사회에선 97년 체제가 정착됐다. 한편에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통해 외환위기를 극복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그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인해 사회 양극화가 구조화되기 시작했다. 또, 집권 말기에 일어났던 일련의 비리 사건들은 적잖은 아쉬움을 갖게 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김대중은 민주화 세력과 민주화 시대를 상징하는 지도자였다. 그는 민주화 투쟁의 중심을 이뤘고, 민주화 시대를 열었으며, 복지국가와 한반도 평화의 기초를 세웠다. 그는 ‘행동하는 양심’이었고, 역사가 결국 발전한다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써 증거했던 정치가였다.

‘김대중 자서전’은 이러한 김대중의 삶과 정치가 펼친 드라마를 생생히 보여준다. 역사에서 비약은 없다. 우리나라가 이제 97년 체제를 넘어서 새로운 국가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면, 그 출발은 당연히 김대중 시대의 성취와 한계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영접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정치가의 미래

김대중의 일생을 돌아보면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정치란 한 사회의 자원과 가치 배분에 대한 최종 의사 결정을 함의한다. 인간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한, 그 사회 속에 내재한 다양한 가치와 이익을 조정하는 정치는 불가피한 것이다.

이런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정치가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정의를 내린 이론가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다. 베버는 정치가란 ‘악마적 수단’을 통해 ‘천사적 목적’을 실현하는 존재라고 규정한 바 있다. 때로는 원칙으로, 때로는 타협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게 바로 정치가의 역할이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정치가가 갖춰야 할 미덕은, 베버를 다시 인용하면,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이다. 열정과 책임감의 다른 이름은 의지다. 의지가 목표로 삼는 것은 더 나은 국가와 사회로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2009년 5월 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헌화한 뒤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오열하고 있다. 손용석 기자

정치사회학을 공부해온 내게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남긴 말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의 하나는 1997년 대선 텔레비전 토론에서 김대중 후보가 한 연설이다. ‘김대중 자서전’에 나오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행히도 저는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국민이 저를 이 때에 쓰시려고 뽑아 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위기의 강을 건너는 다리가 되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제 등을 타고 위기의 강을 건너십시오. 저는 다음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두 분은 다음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저에게 꼭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그에게 표를 던졌든 던지지 않았든 이 호소는 정치가의 소명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세 차례의 대선 도전에 실패했지만 결코 굴하지 않은 의지의 소유자였던 김대중에게 우리 현대사는 외환 위기 극복이라는 과제를 안겼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바탕으로 외환 위기의 덫을 벗어나고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열었다.

2009년 8월 23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마친 운구 행렬이 추모식장인 서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과학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는 현재, 인류는 새로운 국가와 사회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동 속에서도 인류의 운명을 최종 결정하는 정치 및 정치가의 역할에 변함이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열정, 책임감, 균형 감각을 갖춘 정치가의 존재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 조건이다.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을 이끌어 나갈 정치가를 기다리는 이가 결코 나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 회에는 이육사의 ‘육사시집’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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