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표 하회세계탈박물관="" 관장="" 인터뷰="">
 1996년 문 연 국내 첫 탈박물관…50여개국 탈ㆍ인형 3200점 소장 
김동표 하회세계탈박물관장이 파푸아뉴기니에서 온 머드맨마스크를 설명하고 있다. 류수현기자 suhyeonryu@hankookilbo.com
김동표 하회세계탈박물관장이 공방에서 양반탈을 만들고 있다. 류수현기자 suhyeonryu@hankookilbo.com

“탈은 사람과 같습니다. 생활이 탈에 담겨있습니다.”

28일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세계탈박물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 안내소부터 1㎞ 바깥의 이 탈박물관에는 김동표(67ㆍ사진) 관장이 전 세계 탈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전국 최초의 탈박물관인 이곳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된 하회탈과 봉산탈 등 우리나라 탈 20종 200여 점과 바누아트 소토 캐나다 등 6대륙 50여 나라의 탈 800여 점, 20여 나라의 민속인형 50여 점이 관람객의 발길을 붙들고 있었다. 창고에 보관 중인 탈 1,800여 점을 포함하면 이 박물관의 탈과 인형 등은 모두 3,200점 정도. 시가로는 40억원을 호가한다.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한국박물관협회 주최로 열린 ‘한국 박물관ᆞ미술관인 신년교례회’에서 박물관 활성화에 이바지한 공로로 유일하게 대통령상을 받은 그는 “탈은 재앙 앞에 무력해지거나 기도를 할 때, 사냥을 할 때도 사람과 함께 한 일상도구”라며 “탈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전통신앙이 근원”이라고 말했다.

김 관장이 전국 처음으로 탈박물관을 개관한 것은 1996년이다. 건물 3동에 연면적 2,000㎡ 규모의 2층 전시관 등 탈박물관에는 연간 40만명이 찾고 있다. 하회마을 방문객 10명 중 4명이 이곳을 찾는 셈이다.

박물관에 따르면 파푸아뉴기니의 ‘머드맨마스크’를 제외하곤 모두 김 관장이 직접 현지에서 구한 탈이다. 머드맨마스크는 흙으로 빚은 후 굽지 않고 쓰는 탈로 2000년대 초 국제배송을 통해 들여오다 두 차례나 공항 컨베이어 벨트에서 부서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세 번의 시도 만에 이 탈을 손에 쥐었을 때의 감동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단다.

그가 탈박물관을 열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1975년 군에서 제대한 직후였다. 서울로 올라가 목공예를 배우던 어느 날 양반탈 우표를 내밀며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나요”라고 묻던 이웃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당시 탈을 기계로 찍어내는 공장만 있던 터라 수작업을 향한 의욕이 불타올랐다.

김 관장은 “수작업 중 쏟아진 실패작을 들고 신세계백화점에 가서 팔기도 했다”며 “젊은 날의 실패를 자양분으로 오늘의 탈박물관이 탄생했다”고 회고했다.

1981년 하회마을로 돌아온 김 관장은 공방을 열고 본격적인 탈 제작에 돌입했다. 그는 “당시 공방 옆에 ‘부용탈방’이라는 이름으로 전시장을 마련해 직접 만든 하회탈 9점을 전시한 것이 탈박물관의 시초”라며 “주위의 반응이 좋아서 계속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만든 하회탈은 우리나라 공식탈로 해외 공관 등에서 내빈 선물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가 국립중앙박물관의 협조를 받아 전시 중인 옛 하회탈의 크기와 비율 등을 정밀 측정한 후 제작했기 때문이다.

하회세계탈박물관은 2013년부터 매년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에 선정돼 지금까지 전국 초중학생 6,000여 명이 암막 속 탈을 만지고 그림으로 그린 뒤 만들어보는 체험을 거쳤다. 김 관장은 2011년 우리나라 최초의 탈박물관을 설립한 공로로 한국박물관협회로부터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도 수상했다.

임노직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장은 “김 관장은 탈 전시를 넘어 탈의 가치와 의미 등을 보존하고 대중에게 교육하는 등 사회적 역할에 가장 충실한 박물관인”이라고 평가했다.

김 관장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전 세계의 탈을 모으려면 갈 길이 멀다”며 “탈이 더 대중화되도록 연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안동=류수현기자 suhyeonry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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