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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신뢰는 지적(指摘)에서 시작된다

입력
2019.01.1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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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신뢰하는가? 세계가치관조사 (World Value Survey, 2014)에 나타난 한국과 독일의 신뢰도를 비교해 보자. 가족에 대한 신뢰는 한국(98%)이 독일(95%)보다 약간 높았다. 반면 지인에 대한 신뢰에선 독일이 한국을 88% 대 81%로 앞질렀다. 나아가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한 신뢰도에선 독일(31%)과 한국(19%)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이러한 차이는 신뢰 최강국 스웨덴과 비교하면 더 확연해진다. 스웨덴의 신뢰 수준은 한국과 비교해 가족에 대해선 0.9%포인트 높으나, 지인에는 16%포인트,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해선 38%포인트나 높았다. 한마디로 우리의 신뢰는 가족, 지인에 집중되고 타인에 대한 신뢰는 낮은 편이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더 낮아지고 있다. 타인에 대한 신뢰도는 2004년 발표에선 27%였는데 10년 사이에 19%로 떨어졌다.

낮은 신뢰도는 개인의 행복도를 떨어뜨린다. 초면인 사람보다 친구와의 대화가 더 즐거운 이유는 신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3)에 따르면 한국인의 삶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0으로 OECD 평균(6.62)에 못 미쳤는데 특히 사회적 유대감이 낮아서 34개 회원국 중 바닥에서 3번째였다. 또 신뢰가 낮으면 사회적 갈등 해결도 어려워진다. 상대의 약속이행을 신뢰하지 못하면 합의할 마음이 안 생기게 마련이다. 북미 핵 협상이 어려운 것도 이행에 대한 신뢰가 없는 탓이다. 갈등이 오래가면 사회적 문제 해결이 지체되어 발전도 늦어진다.

낮은 신뢰는 경제에도 짐이다. 일단 믿고 허용한 후 문제가 된 경우를 엄하게 처벌하면 되는데, 믿을 수가 없으니 아예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제도가 바로 규제다. 신뢰가 낮으면 규제와 인증절차가 많아지고 증명서류도 잔뜩 필요하다. 모두 불신비용이다. 많은 연구들은 신뢰가 높아지면 생산성이 올라 경제성장률도 높아진다고 설파한다. 이런 점에서 신뢰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다. 사회적 자본은 수입할 수도 없고, 단기간에 개선하기도 어렵다. 과거에는 물적 자본, 인적 자본이 성장에 중요했다면 앞으로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신뢰 등 사회적 자본이다.

우리의 신뢰도가 낮은 이유는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신뢰 깨기가 만연한 이유는 그리 해도 들통나지 않거나 들통나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신뢰 사회를 위해 투명성과 법 집행의 공정성 등 법치주의 확립이 중요한 이유다. 국가가 법치주의 확립에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시민도 신뢰를 저버리는 타인의 행동을 눈감아 주어서는 안 된다. 선진국일수록 신고 정신이 투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최근 다양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투명성 강화라는 점에서 사회적 신뢰 제고에 긍정적인 일이다.

우리가 사회적 신뢰 제고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신뢰는 소소한 약속을 지키는 일부터 시작된다. 공동체 내 소소하지만 대표적인 약속이 공중도덕이다. 그간 많이 개선됐으나 우리의 공공예절은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크다. 침 뱉기, 긴 자동차 공회전, 담배꽁초 투기 등은 경범죄이므로 신고 대상이다. 그러나 신고 대상도 아닌 단순 비매너인 경우도 많다. 공공장소 휴대폰 소음, 지하철 쩍벌남, 샤워 없이 공중탕 입욕 등으로 불쾌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런 무매너의 상습 피해자가 되다 보면 결국 타인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다. 나만 남을 배려하는 것을 억울하게 만들어 결국 사회 전반의 배려심을 약화시킨다. 거창하지만 우리 사회의 신뢰 제고를 위해 이러한 비매너에 대한 지적을 아끼지 말자. 물론 지적은 최대한 부드러운 방법으로 하자. 우리의 불쾌함 해소가 아니라 신뢰 제고라는 공익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뢰의 시작은 문제를 지적(指摘)하는 것이다.

박진 국회미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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