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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당당, 가까이 보면 움츠린 듯… 조각에 우리 시대의 모습을 새겨 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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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당당, 가까이 보면 움츠린 듯… 조각에 우리 시대의 모습을 새겨 넣다

입력
2019.01.14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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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佛 작가 자비에 베이앙 개인전 

 탄소섬유ㆍ나무 등 소재 20여점 

프랑스 조각가 자비에 베이앙이 10일 서울 성북동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현대 인간상을 대변하는 ‘마크’를 등지고 서 있다.
프랑스 조각가 자비에 베이앙이 10일 서울 성북동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현대 인간상을 대변하는 ‘마크’를 등지고 서 있다.

검은 거인이 우두커니 서 있다. 곧은 두 다리는 살짝 벌렸고 두 팔은 가지런히 내렸다. 당당하고 듬직해 보인다. 작품을 1m 앞에서 보면 좀 다르다. 멀리서 추정했던 거인의 분위기나 성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번쩍이고 매끈한 검은 조각상에 불과하다. 거인의 뒤로 돌아 다시 멀어지면 앞과 달리 살짝 움츠린 듯 구부정한 등이 보인다. 무기력하고 처연한 느낌마저 든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파란색 둥근 구슬 같은 대형 모빌(Great Mobil)을 설치해 주목을 받았던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자비에 베이앙(56)의 신작 20여점을 만날 수 있는 개인전이 서울 성북동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리고 있다. 청담동에 이어 성북동에 공간을 마련한 미술관 313아트프로젝트 개관전이다.

자비에 베이앙의 ‘나타샤’.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자비에 베이앙의 ‘나타샤’.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베이앙이 국내에서 두 번째로는 여는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다양한 재료로 제작된 인물 조각이 주를 이룬다. 10일 방한해 국내 기자들을 만난 베이앙은 “서 있는 자세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분위기, 시대상마저도 읽힌다”며 “보편적인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자세를 조각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알루미늄에 짙은 갈색의 폴리우레탄 페인트를 칠한 ‘나타샤’가 대표적이다. 나타샤는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무릎에 팔을 올려놓고 턱을 괸 후 두 다리를 벌린 채 걸터앉아 있다. 눈, 코, 입, 머리카락 등 세부적인 특징을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자세 때문에 남성이라 단정짓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포착한 모델은 여성이었다. 베이앙은 “남자로 착각한 것은 그의 자세가 남성적인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며 “수십 년 전만 해도 여자가 저런 자세를 취하면 남자 같다고 하지만 요즘에는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착시 효과를 주기 위해 작가는 조각상에 가장 기본적인 형태만 남겼다. 그는 유명인이나 전문 모델이 아닌 지인이나 우연히 알게 된 낯선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업한다.

자비에 베이앙이 10일 서울 성북동 313아트프로젝트에 전시된 높이 2m가 넘는 조각상 ‘마크’옆에 서 있다.
자비에 베이앙이 10일 서울 성북동 313아트프로젝트에 전시된 높이 2m가 넘는 조각상 ‘마크’옆에 서 있다.

조각들이 다양한 크기로 제작된 점도 흥미롭다. 높이 15㎝의 초소형 작품부터 높이 2m가 넘는 대형 작품까지 있다. 보는 이의 위치나 시각에 따라 똑같은 작품이라도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작품 크기를 달리했다고. 베이앙은 “멀리서 보면 조각의 형태나 특징이 잘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형태가 아예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다. 검정 배경에 알루미늄 판을 올리고, 기계로 갈아서 수많은 점을 찍은 ‘유령 풍경(Ghost Landscape)’은 한 발 떨어져서 보면 구름의 형상이 보이지만 다가서서 보면 점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그는 “대상이 가진 실질적인 형태 이면에 있는 관념적인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추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칼로 깎아 내린 듯 날카로운 직선으로 상을 깎은 것도 보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형태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자비에 베이앙의 ‘야나’.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자비에 베이앙의 ‘야나’. 313아트프로젝트 제공

탄소 섬유, 폴리우레탄, 나무, 금, 은, 알루미늄 등 10개가 넘는 소재를 썼다. 베이앙은 “탄소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원소 중 하나인데 이런 소재를 사용해 가장 현대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했다. 자연친화적인 자작나무를 깎아 만든 인간상도 매끈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는 “다양한 소재와 기술을 이용해 자신만의 길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작품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소재 발굴에 다방면으로 시도한다”고 했다.

눈으로 보이는 형태와 그 의미에 천착해온 작가는 “우리가 보는 풍경은 돌멩이 하나조차도 똑같은 것이 없다”며 “단순히 피상적인 형태가 아닌 그 너머의 것을 보여주는 작업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2월 15일까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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