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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국기원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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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국기원의 불편한 진실

입력
2019.01.08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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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삼동 국기원 본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역삼동 국기원 본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기원이 시끄럽다. 현직 원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파행을 겪고 있고, 여러 혐의와 일탈로 개원 이래 최악의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국기원은 어떤 곳인가. 태권도 종주국의 국민으로 그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어도 선뜻 그 역할을 설명하기 어렵다. 국기원은 세계 태권도의 총 본부 격이다. 로마에 있는 바티칸 교황청저럼 지구촌 태권도인들에게는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대한태권도협회가 '국내 태권도', 세계태권도연맹(WT)은 '스포츠로서 태권도'를 주관한다면 국기원은 약 9,000만명으로 추산되는 국내ㆍ외 태권도 수련인과 지도자를 아우르면서 승품ㆍ단 심사, 지도자 교육ㆍ연수, 연구, 시범단 육성 및 해외 파견 등의 다양한 사업을 하는 태권도 발상지의 ‘메카’라 할 수 있다. 태권도의 세계화와 무예 태권도의 활성화를 위해 1972년 '태권도중앙도장'으로 개원한 뒤 이듬해 지금의 '국기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74년 재단법인 국기원으로 설립등기를 하고 고(故) 김운용 초대 원장이 취임했다.

그렇게 태권도 정신과 영혼이 숨쉬어야 할 곳은 언제부터인가 정치 논리가 작용하는 추한 집단으로 변질됐다. 재단법인이었던 국기원이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2010년 5월 특수법인으로 출범하면서 정부 산하의 공공기관으로 예속되면서부터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보조를 받기 시작하면서 이사장과 원장 선임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여러 체육단체 중에서도 ‘국기’라는 상징성 때문에 2014년 정치인들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 권고 이전까지 국기원 이사장이 되는 건 국회의원 배지 다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국기원 원장 역시 보수는 연 1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태권도인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 자리를 꿈꾼다. 국기원장은 태권도인들에게 '태권도계의 대통령'과도 같은 선망의 자리다.

구속된 오현득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후보 시절 대선 후보 경호 대장을 맡았다. 태권도계에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정부 추천으로 2010년 국기원 이사로 취임했다. 이후 2013년 이사회에서 재신임을 받지 못해 물러났다. 그런데 국기원 개원 사상 첫 정치인 이사장에 선출된 홍문종 전 이사장 추천으로 다시 국기원 이사에 재선임됐다. 중임 논란 속에서 행정부원장을 거쳐 원장까지 오르게 됐다. 현직 원장이 구속된 데는 자정 기능을 상실한 절름발이 이사회의 패착이 결정적이었다. 직무 정지를 결의해도 몇 번을 했어야 할 원장의 일탈을 끝까지 눈감은 건 철옹성을 구축한 ‘그들만의 리그’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행 국기원의 정관상 이사장이 원장을 선임할 수 있고, 원장은 이사 선임의 핵심 권한을 가지고 있다. 또 반대로 국기원 이사장은 재적이사 과반수 찬성으로 이사 중에서 선출하게 돼 있다. 결국 갖가지 비리가 횡행해도 서로 뽑아주고, 돌고 도는 ‘비호’만 있을 뿐, 견제 장치는 전무한 구조다.

태권도는 반 세기 만에 전 세계 209개국으로 전파해 세계적인 대표 무술로 자리매김한 우리의 문화 유산이다. 한국 스포츠의 ‘대부’로 불렸던 김운용씨는 1972년 국기원을, 1973년 WT를 차례로 설립했다. ‘스포츠 태권도’로서 더 이상 올림픽 금메달 독식은 요원해졌지만 세계화를 이뤘다는 평가 속에 한국인 조정원 총재가 2021년까지 17년간 장기 집권하는 등WT의 위상도 드높아졌다. 그러나 국기원은 세계태권도본부로서의 위상은 고사하고 점점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다. 실제 많은 국가협회에서 국기원 단증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 단증을 발급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세계는 이미 국기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전 세계에 나가 태권도 씨앗을 뿌린 원로들의 탄식도 짙어지고 있다.

성환희 스포츠부 차장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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