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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연탄 보일러

입력
2019.01.03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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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가입을 이유로 1989년 이리중학교에서 해직된 뒤 시인 안도현은 문득 재직 시절 아이들에게 가을에 대한 시를 써 보라고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단풍, 낙엽, 귀뚜라미 같은 시가 대부분이자 “쓸쓸한 가을이면 연탄을 소재로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했던 생각이 나서 지어본 시가 그를 대표하는 ‘너에게 묻는다’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고향을 떠나 어릴 때부터 자취를 해 연탄에 얽힌 추억이 많았던 그는 오래 전 인터뷰에서 시를 쓸 당시 마음을 “궁핍한 자신에게 질문과 채찍”을 던진 “성찰의 기회를 갖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했다.

□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1990년 가구별 난방 비율은 연탄보일러ㆍ아궁이가 62.3%, 기름보일러가 19.9%, 가스 5.2%, 전기 0.3%였다. 이후 신도시 등을 중심으로 도시가스 보급에 속도가 붙으면서 난방 연료에서 연탄이 차지하는 비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2015년 인구총조사에서는 보일러 연료로 도시가스를 쓰는 가구가 64.4%, 기름 12.1%, 전기 3.5%, LPG 2.6%이고 연탄보일러ㆍ아궁이는 1.5%에 불과했다.

□ 그래도 난방 연료로 연탄을 쓰는 가정이 전국에 14만가구는 된다고 한다. 도시 지역의 경우 대부분 고지대 거주 저소득층이다. 지리적으로 가스 공급이 여의치 않은데다 무엇보다 등유의 6분의 1 정도로 열량 대비 가격이 싸다는 점이 큰 이유다. 이런 서민들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가격억제 정책을 써 왔던 정부가 지난해 말 연탄 가격을 20% 가까이 인상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그동안 생산자에게 지급해 온 보조금을 폐지하는 계획의 일환이라고 한다.

□ 대신 연탄 사용 저소득층 지원금을 늘리고 보일러 교체 비용 등을 전액 지원한다. 하지만 그 정도 증액으로는 모자란다며 세밑부터 “연탄값 내려 달라”는 릴레이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와 약속을 어기고 연탄값을 싼 수준으로 묶어 둘 수는 없는 일이니 우선은 연탄 사용 가구 지원을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는 값비싼 기름보일러 가구까지 포함해 도시가스로의 교체를 최대한 확대해야 한다. 시인은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돼라 했지만 연탄과는 작별을 고해야 할 시대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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