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보면서 2000~1887’이라는 소설이 있다. 미국 문학가 에드워드 벨러미의 1888년 작품이다. 그는 당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써 미래의 이상적 사회주의 사회를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후에도 이 책이 여전히 미국 대학생들의 필독서 가운데 하나인 데는 미래인의 입을 빌려서 현실 사회를 비판하는 기발한 기법이 한몫했다.

미국 탈탄소연구소의 리처드 하인버그는 벨러미의 기법을 도입해서 ‘미래에서 온 편지’라는 책을 썼다. ‘미래에서 온 편지’는 수백 년 뒤에서 온 편지가 아니다. 겨우 2107년도를 살고 있는 백 살 노인이 2007년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원망과 경고의 메시지다. (2007년에 태어난 대부분의 한국 어린이들은 2107년에도 여전히 숨 쉬고 있을 것이다.) 2107년은 자원을 둘러싼 전쟁으로 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인터넷이 없어 정보 공유가 거의 불가능하고, 농사 지을 종자와 물이 부족하고, 곳곳에 쓰레기더미가 넘쳐나고, 세대 간 갈등이 극에 달한 시대다. 백 살 노인은 자신의 편지로 인해 2007년 이후의 역사가 바뀌고 그래서 그 편지가 역사상 가장 기괴한 유서이자 쓸모없는 기록이 되길 염원하며 편지를 끝맺는다.

미래에서 온 편지는 쓸모없는 기록이 되어야만 가치가 발휘되는 문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것을 너무도 잘 아는 나도 자동차, 에어컨, 엘리베이터를 사랑하는데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석유에 중독되었다. 중독은 병이다. 병은 치료해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어떤 동물인가? 다른 동물과는 달리 불을 무서워하기는커녕 산불을 이용하고 심지어 없는 불도 만들어 사용한 존재 아닌가. 환경에 적응하는 대신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하여 농사혁명을 일으킨 존재 아닌가. 자연에서는 절대로 타지 않는 우라늄에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존재 아닌가. 우리가 바로 프로메테우스다. 이렇게 자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 봐야 소용없다. 미래에서 온 편지는 바로 그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낸 거니까.

프로메테우스의 자부심 대신 인간의 겸손함을 품은 사람들이 생겼다. 원래 자연에 있는 에너지를 사용하려고 시도하는 거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햇빛의 에너지로 전기를 만들고, 파충류처럼 햇볕으로 물을 데워 사용한다. 바람의 힘과 시냇물의 힘으로 곡식을 빻던 선조의 지혜를 본받아서 바람개비와 물레를 돌려 전기를 얻는다. 우리는 점점 겸손해져서 땅에서 에너지를 얻으려고 한다. 지열을 이용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19세기 과학자들은 ‘전류가 흐를 때 그 주위에 자기장이 생긴다면 자기장을 변화시켜 도선에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영국의 물리학자 패러데이는 도선 주변에 자기장의 변화가 생기면 전류가 발생한다는 ‘전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했다. 전동칫솔과 휴대전화 무선충전이 바로 이 전자기 유도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지구는 하나의 자석이다. 지구는 내핵-외핵-맨틀-지각으로 구성되는데 내핵과 외핵에는 자성을 띠는 철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런데 외핵은 액체 상태여서 서서히 흐른다. 그 결과 외핵이 마치 발전기처럼 작용하여 자기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서 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2016년 미국 물리학회가 발행하는 ‘피지컬 리뷰 어플라이드’에는 간단한 장비를 이용하여 지구 자기장에서 약한 전류를 얻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이 실렸다.

겸손해진 사람이 다시 프로메테우스로 돌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최근 인터넷에는 ‘외부 에너지원 없이 오직 지구 자기장만을 증폭하여 전기를 만드는 장치’에 관한 기사가 떠돌았다. 이 장치는 입력된 전기를 100배 증폭해 그 가운데 1은 다시 순환해 사용하고 나머지 99의 잉여 전기는 필요한 곳에 사용하게 한다. ‘지구공’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장치가 보급된다면 각 가정과 공장, 그리고 KTX는 전기요금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노벨 물리학상은 물론 경제학상과 평화상까지 거머쥐어야 마땅한 기술이다.

하지만 이 기술은 100% 뻥이다. 자기장에서 전기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1이라는 에너지를 100으로 증폭할 수는 없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어긋난다. 영구기관과 무한동력에 대한 꿈은 버려라. 우물에는 숭늉이 없다. 숭늉 만드는 우물에 돈을 투자하는 사람은 그냥 바보다. 나중에 그 누구도 원망해서는 안 된다. 그런 기사를 실어주는 언론사는 책임을 져야 한다.

‘미래에서 온 편지’는 ‘화석연료에 중독된 인류에게 보낸 경고’다. 굳이 2107년에 깨달을 일이 아니다. 2019년의 지구인들도 이미 알고 있다. 석유가 가장 많은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이런 속담이 있다. “내 아버지는 낙타를 타고 다녔다. 나는 자동차를 몰았다. 내 아들은 제트여객기를 타고 다닌다. 내 아들의 아들은 ‘다시 낙타’를 타고 다닐 것이다.”

지구 자기장으로 엄청난 전기를 얻겠다는 생각은 버려라.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