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9] 요즘 쿠킹 클래스는 요리만 배우지 않는다. 셰프와 대화를 나누고 수강생들과 친목을 다진다. 지난달 28일 서울 청담동의 키친노메뉴 클래스 모습. 김혜윤 인턴기자

“클램차우더에는 휘핑크림이 아니라 생크림을 넣어야 해요.” 나긋나긋한 ‘요리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수강생들은 메모지에 열심히 필기까지 해 가며 수업을 듣는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요리 스튜디오에서는 가스레인지와 오븐을 오가며 먹음직한 요리가 만들어졌다. 구운 야채 샌드위치와 클램차우더(조갯살과 베이컨, 각종 야채를 넣고 끓인 미국식 스프)가 이날의 메뉴였다.

샌드위치라고 해서 쉽게 보면 안 된다. 겨울철 지인들을 초대해 집에서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 이날 메뉴는 6~8인분이 만들어졌다. 주변에서 바로 구할 수 있는 호박, 가지, 파프리카와 아보카도를 켜켜이 쌓아 올린 샌드위치는 수제 토마토 잼과 하바티 치즈를 얹으며 근사한 파티 음식으로 변모했다. 오븐에 구운 샌드위치가 세상 밖으로 나오자 마자 수강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 키친노메뉴의 수업에서 만들어진 구운 야채 샌드위치. 김혜윤 인턴기자

여느 요리 학원과 다를 바 없는 모습. 하지만 이 요리 수업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친구 만들기다. 옆자리에 앉은 수강생은 물론 셰프와의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 요리가 완성되면 모두가 주방을 떠나 테이블로 옮겨 둘러 앉는다. “정말 맛있다”는 감탄사가 이어지는 시식 시간의 대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회사 얘기, 육아 얘기 등 공통의 관심사가 식탁 위를 유영하며 금세 하나의 친분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날 클래스를 찾은 직장인 김민경(45ㆍ가명)씨는 “요리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끼리 관심사가 비슷하다 보니 더 친해질 수 있다”며 “맛있고, 재미있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는 장점이 있어 한 달에 한 두 번씩 쿠킹 클래스나 베이킹 클래스를 찾아 듣는다”고 말했다. 버터의 고소한 향기에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까지 더해지자 요리 수업을 하던 공간은 분위기 있는 브런치 식당으로 변모했다.

수업에서 배우는 요리가 완성되면 수강생들은 분위기 좋은 식탁에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며 함께 식사를 한다. “내가 한 요리보다 더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이러한 쿠킹 클래스의 장점이다. 김혜윤 인턴기자
◇사람 사귀고, 친목 다지는 요리 수업

“식탁에서 관계가 형성된다. 식탁에서는 그들의 현재 상태도 드러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클로드 카프만의 말이다. 우리도 비슷한 문장이 있다. 함께 식사하며 쌓아 올린 정을 일컫는 ‘밥정’이 무섭다고. 요즘 쿠킹 클래스는 단순히 요리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함께 먹으며 정을 쌓아 가는 곳이다.

김민경씨는 이날 자신이 직접 만든 케이크도 가지고 왔다. 수업을 듣는 이들과 나눠 먹기 위해서다. “보통 음식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먹으려고 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주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도 먹는 것보다는 만드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거든요. 다들 잘 먹어 주니까 신이 나서 이렇게 직접 만든 케이크를 들고 오고요.”

서로가 서로를 “요리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이곳에서 수강생들 사이의 호칭은 ‘언니’ ‘동생’이다. 지난해 11월 클래스를 처음 들은 후 이곳에 푹 빠졌다는 방송인 민영원(34)씨는 “수업이 끝나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락하고 관계를 이어가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 쉽게 사귀기 어려운 친구들을 이곳에서 사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요리뿐만 아니라 육아도 배운다”며 웃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물론 원래 지인들과도 우정을 더 다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주부 마경희(43)씨는 이날 친구인 직장인 김정하(39)씨와 함께 클래스를 찾았다. 마씨는 “그냥 약속을 정해도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니까 요리도 배울 겸 클래스를 찾았다”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기 때문에 수업을 자주 듣는 편”이라고 했다.

이곳을 운영 중인 이지애 키친노메뉴 대표에 따르면 정식으로 열리는 쿠킹 클래스는 한 달에 6~8번 꼴로, 회당 12명 정도의 수강생들이 수업을 듣는다. 이와 별개로 지인들이 모여 특정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수업을 열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완성한 음식을 함께 먹으며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요리 스튜디오가 되는 셈이다. 요즘 기업에서는 단체회식으로 쿠킹 클래스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이 수업을 찾는다. 이 대표는 “모임을 통해 참석하는 경우엔 남성들도 꽤 자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쿠킹 클래스에서 요리를 직접 하는 사람은 셰프 뿐이다. 수강생들은 강의를 보고 들을 뿐, 음식을 직접 만들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 사람과의 대화가 수월해진다.
◇직접 요리 만들지 않아 사람에게 집중 가능

요리학원과 쿠킹 클래스는 다른 점이 여럿이다. 요리학원은 수강생들이 직접 조리를 하나 쿠킹 클래스는 그렇지 않다. 다양한 요리 수준을 지닌 사람들이 자유롭게 같은 수업을 듣는다는 점도 쿠킹 클래스의 특징이다.

소규모 스튜디오의 공간에서는 개별 조리대를 구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수강생들은 자신의 조리대 대신 셰프 앞에 앉는다. 이 점 때문에 셰프의 눈을 보며 질문을 던지고 옆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생겼다. 직접 재료를 손질하고 불 조절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하는 수업처럼 난이도 조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수강생들은 자유롭게 질문을 던진다. “오븐 예열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하는 요리 초보의 질문부터 “바지락 대신 굴을 사용할 때는 불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고난도 질문까지 궁금한 점은 그때그때 묻는다. 김정하씨는 “다 같이 조리실습을 하는 학원은 내 칼질에 집중하느라 아예 대화를 할 수도 없다”며 “조리에만 집중하는 학원이 아니라 맛있는 걸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곳이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수강생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또 다른 말은 “입맛이 각자 다르니 이것저것 시도해 보라”는 셰프의 말이다.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정답 레시피’가 아니라 ‘응용가능성’을 일러준다. 직장인 최혜원(39)씨는 “요리만을 잘 가르쳐주려고 한다면 요리책처럼 오차 없는 계량을 강조할 텐데, 이곳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진행된다”며 “이 자체가 힐링의 시간이 된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의 핵심은 여전히 요리다. 이날 2시간여 동안 이어진 수업 동안 전수된 깨알 팁은 수없이 많다. 허브인 타임을 냉장 보관할 때는 바닥에 물을 적신 키친 타월을 넣어두면 좋다, 바질은 깻잎처럼 돌돌 말아 썰면 예쁘게 썰린다, 버터는 완전히 달궈진 팬에 지글거리게 둬선 안 되고 뭉근히 녹여 가며 요리해야 한다, 모든 조리 과정 중 알코올이 들어간 순간에는 센 불을 활용해야 한다 등이 수강생들의 메모지에 적혔다.

요리법과 함께 요리하며 이뤄지는 대화의 소중함을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이지애 대표는 “아무리 요리가 목적이어도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는 부분은 요리뿐만은 아닌 것 같다”며 “직장 생활 이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은 시대에 가볍게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가 저에게도 기분 전환의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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