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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은, 서울은 어떻게 탄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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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은, 서울은 어떻게 탄생했나

입력
2018.12.21 04:40
수정
2019.01.04 20: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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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풍경. 소 몰아 밭 가는 농부 뒤로 보이는 게 현대아파트다.1970년대 강남 개발, 부동산 광풍이 만든 계급의 경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진작가 전민조∙푸른역사제공
197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풍경. 소 몰아 밭 가는 농부 뒤로 보이는 게 현대아파트다.1970년대 강남 개발, 부동산 광풍이 만든 계급의 경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진작가 전민조∙푸른역사제공

시간 여행을 하기에 가장 즐겁고, 싸고, 간편한 방법은 소설을 읽는 것이다. 타임머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역사책은 어렵고, 박물관까지 가는 길은 머니까.

지금의 서울이 탄생한 1960년대로 가 보자. “과거 사람들을 과거 기준이 아니라 현재 우리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생각이 짧은 사람들이 항상 하는 실수”라고 미국 작가 루이스 라무르가 말했던가. 기왕이면 그 때 나온 소설을 길잡이 삼는 게 좋겠다. 최인훈 박완서 이호철 김승옥 윤흥길 최인호 조세희 박태순을 비롯한 큰 이름의 작가들이 서울을 제대로 보여줄 거다.

만만치 않은 여행이긴 하다. 찾아 볼 책도 많고, 근대 소설이라는 게 술술 읽히는 것도 아니다. 송은영(48)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마침 그 여행을 먼저, 그것도 제대로 다녀왔다. 작가 16명의 소설 110편에 흩어져 있는 역사와 기억을 발굴해 분류한 기록을 ‘서울 탄생기’에 담아 냈다.

저자는 국문학 박사다. 그러나 책은 문학적 감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울의 지리, 건축, 사회사, 인구통계, 도시정책을 촘촘하게 짚는다. 1961년부터 1978년까지 서울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 기술하고 그 역사를 증명하는 소설을 인용한다. 지루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연구란 무엇인가’를 성실하게 보여 준다. 문장도 탄탄하다.

1960년대 말 정부는 서울 곳곳에 시민아파트를 지었다. 서민 주거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도시 빈민을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첫 시민아파트인 서대문구 현저동 금화아파트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둘러보고 있다. 국가기록원
1960년대 말 정부는 서울 곳곳에 시민아파트를 지었다. 서민 주거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도시 빈민을 쫓아내기 위해서였다. 첫 시민아파트인 서대문구 현저동 금화아파트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둘러보고 있다. 국가기록원

해방 이후 서울은 한 번도 평온한 적 없다. 개발, 소외, 권력, 욕망, 좌절, 폭력으로 끓어올랐고, 그 동력으로 쉼 없이 팽창했다. 저자는 서울의 변태와 혼란을 세 시기로 나누어 들여다 본다. 우선 서울 행정구역이 지금 꼴을 갖춘 1961년부터 1966년까지. 서울은 입신과 양명의 유일한 경기장이었다. 이호철의 표현을 빌리면, 몰려든 사람들로 “우글우글”했다. “일자리는 없고, 사람들은 입만 까지고 약아지고, 당국은 욕사발이나 먹으며 낑낑거리고, 신문들은 고래고래 소리나 지른다.”(이호철 ‘서울은 만원이다’)

“서울에 가고 싶어요, 단지 그거뿐예요.” 김승옥 ‘무진기행’ 속 주인공이 서울 출신 애인과 섹스한 뒤 처음 하는 말이다. 전국은 그렇게 서울 신열을 앓았다. 환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너나 없이 판자촌, 골방에 갇힌 빈민이 됐다. “창신동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개새끼들이외다”(김승옥 ‘역사’) 가난을 자기 혐오로 삼킨 시절이었다.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김수영이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거대한 뿌리’)고 했듯, 당시 서울은 아무리 더러운 서울이라도 좋은 곳이었다.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서울은 국가 주도 개발로 천지개벽했다. 빈과 부, 변두리와 도심의 경계가 선명해졌다. 다 같이 가난할 땐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었지만, 더는 아니었다. 이청준 ‘무서운 토요일’의 주인공은 최음제로 아내와 성생활을 간신히 이어 가는, 집에 들어가는 게 무서운 가장이다. 무력한 소시민의 상징이다. 신상웅 ‘만가일 뿐이외다’엔 철거꾼과 싸워 보지도 못하고 병으로 죽어가는 여성이 나온다. “죽어 시체가 길바닥까지 나와 누운 뒤”에야 그의 몸은 저항 수단이 된다. ‘죽어야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역사는 그렇게 길다.

국가는 야간 통행금지령으로 도시 생활자의 시간까지 통제했다. 당시 소설엔 ‘밤 12시 이후’가 없다. 소설 속 사람들은 밤 12시가 되기 전에 부지런히 헤어지고, 12시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잔다. 서울의 밤은 “행복한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잠들었을 때 교만하게 이 도시의 불결한 거리를 걸어볼 수 있는 자유가 빼앗긴 밤”(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었다.

서울 탄생기

송은영 지음

푸른역사 발행∙568쪽∙2만9,000원

이후 1978년까지의 서울을 규정하는 건 ‘강남 개발의 광기’다. 개발 동력은 아파트였고, 개발 결과는 계급이었다. 1970년대는 단군 이래 최대의 부동산 호황이었다. 부동산 투기는 차라리 국민 스포츠였다. 그 시대를 가장 신랄하게 그린 건 박완서다.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어. 사람들이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잘살게 되거든. 젠장, 우리만 빼놓고 말이야.”(박완서 ‘서글픈 순방’) “이곳의 땅은 시시하게 벼 포기나 감자 알맹이 따위를 번식시키진 않았다. 직접 황금을 번식시켰다. 그 황금은 그 땅을 땅 흘려 파는(掘) 사람의 것이 아니라 파는(賣) 사람의 것이었다.”(박완서 ‘낙토의 아이들’)

근대 역사도, 문학도 남성이 주로 썼다. ‘서울의 문학’에 여성이 거의 나오지 않는 이유다. 여성의 전형은 어머니, 누이 아니면 ‘종삼’의 여인이었다. 1970년대 들어 여성은 ‘복부인’이라는 괴이한 존재로 종종 등장한다.

도시는 그저 장소가 아니다. 지도와 숫자로 설명하는 도시는 죽은 도시다. 살아 있는 도시를 만드는 건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삶은 역사 기록물보다는 문학 속에서 더 생생하다. 삶의 기록에 관한 한, 문학적 언어가 가장 정확한 언어일 수 있다. 라면 성분 표시보다 라면 먹는 장면을 묘사한 글이 라면이라는 실체와 더 가까운 것처럼.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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