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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는 없다] 증거가 거짓말을 한다? 유죄 선고받은 10년 지기 끝까지 “난 결백”

입력
2018.12.18 04:40
수정
2018.12.18 11:3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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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경기 포천 암매장 살인사건

포천 암매장 살인사건 범행일지. 그래픽=강준구 기자
포천 암매장 살인사건 범행일지. 그래픽=강준구 기자

살인에도 저마다 이유는 있다.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해, 혹은 원한이 깊고 깊어,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목숨을 노린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등장하는 살인범을 보면서, 우리는 질문하곤 한다.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그랬을까?’

시신이 발견된 건 경기 포천시 영중면에 있는 공동묘지였다. 따뜻한 온도에 뜨거운 햇볕을 동시에 느꼈던 봄인지 여름인지 모를 5월 초, 묘지에는 아침 일찍부터 300명은 돼 보이는 경찰관과 경찰견 몇 마리가 뭔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누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사흘에 걸친 수색, 그때까지 찾고자 했던 건 나오지 않았다. 기진맥진한 무리에게 기다리던 호루라기 소리가 유난히 청명하게 들렸다. 대부분은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봤고, 몇몇은 손에 든 수색도구를 살포시 내려놨다. 다른 몇은 멍한 표정으로 쑤시는 허리를 두드리며 얕은 신음 소리를 뱉어냈다.

시신의 뒷머리는 둔탁한 뭔가에 맞은 듯 움푹 패어 있었다. 목에는 550㎝ 길이의 노끈이 감겨 있었다. 감겨 있다기 보단 조이고 있었다는 편이 더 적절. ‘뒤통수를 가격해서 죽이고, 노끈으로 자살을 위장하려고 했을 것. 그런데 뭔가 사정이 생겼을 거고, 작전을 변경해 땅에 시신을 묻고 간 게 분명하다.’ 현장을 살핀 경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자(死者)의 숨겨진 사정을 그렇게 짐작했다. ‘포천 암매장 살인’ 사건의 시작이었다.

서울 종암경찰서로 실종 신고가 접수된 건 며칠 앞선 4월 30일이었다. “동생이 며칠째 들어오지 않고 있어요.” 여느 실종 신고와 다를 게 없는 다급한 목소리. 사흘 전 집을 나선 뒤 깜깜무소식이라는 내용이었다.

실종자는 직장인 유모(37)씨였다. 집을 나가면서 전날 은행에서 2,000만원을 대출 받아 챙겨갔다는 게 가족이 전한 마지막 모습이다. 어디로 간다, 누구를 만난다, 언제 들어오겠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전화를 몇 번이고 해봤지만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어디로, 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다”고 가족들은 가슴을 칠 뿐, 짐작조차 내놓지 못했다.

경찰은 우선 주변 인물을 탐문해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씨는 그다지 사교적 인물이 아니었다. 평소 자주 만나는 사람도 없었고, 직장과 집을 주로 오갔다. 그나마 눈에 띄는 곳이 있다면 퇴근 후 종종 가던 성북구에 있는 집 근처 헬스장 정도. 원래 자주 가던 헬스장이 도봉구로 옮겨 가면서 유씨는 성북구와 도봉구에 있는 헬스장 두 곳을 들렀다.

경찰이 주목한 인물은 도봉구 헬스장 관장 조모(45)씨였다. “12년째 알고 지낸 사이”라거나 “지방에서 둘이 헬스장을 같이 차리겠다면서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더라”는 등 둘 관계에 대한 주변인 진술도 여럿 받아뒀다.

유씨가 실종 전날 대출 받은 2,000만원의 쓰임새도 드러났다. 운동하는 걸 유난히 좋아했던 그는 직접 헬스장을 차리는 꿈을 가진 뒤 조씨와 자연스레 대화할 일이 잦았다. 지난해부터는 조씨와 헬스장 운영에 대한 질문과 조언을 주고 받는 모습이 여럿에게 목격됐다. 지난 3월, 조씨는 “대전에서 헬스장을 같이 운영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준비하겠다”라면서 유씨에게 계약금을 준비하라고 말했다고 누군가 전했다. 2,000만원이 바로 그 돈이었다. 조씨가 수상했다.

헬스장 폐쇄회로(CC)TV에서도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유씨가 실종된 날 오전 4시40분쯤 조씨가 헬스장에서 검은 비닐봉투를 챙겨 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20분 뒤에는 지하철 1호선 도봉역 인근에서 유씨가 조씨가 운전하는 차량에 오르는 게 화면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 둘이 탄 차의 행적은 시내 이곳 저곳을 돌다 경기 포천시로 간 뒤 끊겼다. ‘단순 가출이 아니겠구나.’ 수사를 전담하고 있던 강력2팀 사무실에 불길한 기운이 가득했다. 5월 3일, 황범식 팀장이 조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서로 불러 들였다. 확인이 필요했다.

5월 7일 경기 포천시에 위치한 공동묘지에서 실종자 유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서울경찰청 제공
5월 7일 경기 포천시에 위치한 공동묘지에서 실종자 유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서울경찰청 제공

조씨는 시종일관 덤덤했다. “그날 포천에 간 건 맞죠. 근데 누구요? 유씨? 아니에요. 혼자 갔어요.” 진술은 시작부터 CCTV 영상과 달랐다. 확보한 영상을 들이밀자 잠시 침묵하곤 말이 달라졌다. “사실 유씨와 갔습니다.” 이유는 황당했다. “유씨가 포천 이동갈비가 먹고 싶다면서 태워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데려다 준 것뿐입니다.”

헛웃음이 났다. 그 새벽에 갑작스레 갈비가 먹고 싶었다니. 또 그걸 먹고 싶다고 서울에서 30㎞ 넘게 떨어진 포천까지 갔다니. 거짓말은 뻔뻔하게 계속됐고, 그럴수록 황 팀장 등의 의심은 커져만 갔다. “범인 냄새가 풀풀 풍긴 거죠.”

운전했던 차량도 의문이었다. 멀쩡하게 자기 차를 두고, 이날은 렌트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조씨는 아무 말이 없었다. “유씨 내려주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묻혀 있는 영중면 공동묘지에 갔다”는 말만 할 뿐. 하필 렌터카에 달려 있는 블랙박스는 그 날에만 꺼져 있었다.

의심투성이지만, 그렇다고 조씨가 범인이라 단정하긴 어려웠다. 실종 당일 둘이 포천시까지 동행했다는 사실 말고, 유씨가 어디에서 내려 뭘 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조씨 말대로 갈비음식점에서 유씨가 내렸을 수도 있었다. “내일 함께 포천으로 내려가시면, 제가 유씨를 어디에 내려다 줬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씨가 내민 제안, 황 팀장은 약속을 한 뒤 유씨를 집으로 돌려 보냈다. 참고인을 계속 붙잡아 둘 수 없었다.

조씨는 경찰서에 나타나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대부분 틀린 적이 없다. 대신 조씨 부인의 신고가 그날 오전 112에 접수됐다. “남편이 메모 하나를 남기고 사라졌다”는 내용. 쪽지에는 ‘형사님들께 죄송하다. 그저 스스로 수치스러워 가는 것이니 도망이라는 오해는 하지 말아달라’고 적혀 있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도 함께.

자칫 유력한 용의자가 또 다른 시신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강력2팀 전체가 조씨 행적을 쫓아 긴박하게 움직였다. 먼저 통신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 받아 휴대폰 분석에 들어갔다. 빠르게 자료를 훑던 황 팀장 눈에 두 건의 통화기록이 들어왔다. 전남 여수시와 화순군에 위치한 숙소 전화번호. 마침 조씨가 서초구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광주행 고속버스에 올랐다는 보고도 들어왔다. 여수나 화순으로 가기 위해 광주로 내려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광주종합버스터미널로 급히 내려간 팀원들이 버스에 설치된 블랙박스에서 조씨가 등장하는 화면을 확보했다. 조씨는 휴게소에서 호두과자 한 봉지를 들고 태연히 서 있었다. 전화했던 숙소에 예약을 했지만 실제 가지는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도망을 간 거고, 그렇다면 조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죠.” 의심이 마침내 확신으로 굳어졌다.

조씨가 체포됐다. 도주한 지 6일 만. 광주터미널 인근 대형마트에서 물을 마시다 ‘우연하게’ 경찰 눈에 띈 것이다. 조씨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았다. 조씨는 여전히 범행을 부인했다. 남은 건 범행에 사용한 도구. 흉기만 나온다면, 그곳에서 발뺌할 수 없는 증거만 나온다면 조씨가 부인을 하는 것과 별개로 수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경찰은 조씨가 범행 당일 탄 차량이 포천에서 서울로 올라간 길을 차근히 뒤쫓았다. 특히 차량이 중간중간 4, 5번 정도 멈춰 섰던 곳을 집중 수색했다. 5월 10일 포천시 인근 강가에서 범행도구가 발견됐다. 모래 위 덥수룩하게 자라난 풀숲 속에 꽁꽁 숨겨져 있던 흉기는 길이 30㎝, 직경 5㎝, 무게 1㎏의 역기 바벨을 거는 봉. 조씨 헬스장에서 가지고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에 사용한 장갑과 삽, 곡괭이도 근처에서 모두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역기 봉에서 유씨 DNA가 검출됐다고 경찰에 전했다.

5월 10일 경기 포천시에서 서울로 나가는 도로 부근 물가에서 범행도구가 발견됐다. 서울경찰청 제공
5월 10일 경기 포천시에서 서울로 나가는 도로 부근 물가에서 범행도구가 발견됐다. 서울경찰청 제공

조씨는 무서울 정도로 뻔뻔했다. 유씨를 죽이지 않았다고 끝까지 고집했다. 범행 직후 유씨에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어 부재중 전화기록을 남기고, 실종된 그를 찾겠다며 직장에 전화를 걸었다고 알리바이를 주장했다. “다 거짓말이었죠. 렌터카 블랙박스도 차량을 빌리자마자 의도적으로 꺼놓은 것이었고요.”

유씨와 동업을 약속한 적도 없다고 발뺌했다. “유씨가 헬스장에 투자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맞장구를 쳐준 것뿐, 대전에 헬스장을 함께 차리자고 계약하거나 약속한 적이 없다”는 주장을 내놨다. 반복되는 혐의 부인과 묵비권을 뒤로 하고, 경찰은 조씨에게 강도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유씨가 가지고 갔던 2,000만원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발견됐다. 범행장소에서 무려 440㎞ 가까이 떨어진 전남 화순군 쌍봉사 인근 야산에 1,460만원이 5만원권 다발로 묻혀있었다. 체포 당시 조씨 수중에 있던 170만원도 유씨가 가지고 나갔던 돈 중 일부였다. 조씨는 “어머니 묘에 다녀오는 사이에 유씨가 사라져버려 찾을 수 없었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한 오해를 살까 봐 길가에 버린 것”이라고 했다.

11월 23일 1심 법원인 서울북부지법 형사13부(부장 강혁성)는 강도살인과 사체유기로 구속기소된 유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씨가 운영하던 헬스클럽 재정상태가 악화하면서 4월쯤에는 보증금 7,000만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3,800만원이 남아 있었다”며 “지속적으로 월세 273만원을 미납하는 등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판시했다. 동업을 제안하면서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밝히지 말아야 한다고 유씨에게 신신당부했다는 경찰 조사 결과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헬스장 보증금과 월세를 내기 위해, 즉 돈 때문에 유씨에게 접근해 살해했다는 결론이었다.

조씨는 최후변론에서 뜬금없이 ‘바벨 봉으로 팔 근육의 일종인 전완근 훈련이 가능한 이유’를 재판부에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앞선 재판 과정에서는 유씨 유가족을 비난하는 등 망자에 대한 2차 가해까지 서슴없이 저질렀다고 한다. 강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범행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반성의 기미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라며 “조씨를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조씨는 1심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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