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씨는 13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상대가 아파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고개만 끄덕이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감정노동일 뿐”이라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사람들이 부르는 별칭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치유자’라는 말이다. 어깨가 무거운 별칭이지만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거의 전부이기도 하다. 현장 치유자로서 내가 가진 결정적 무기를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공감이다.’

쌍용차 해고자, 세월호 유가족 심리치유 활동으로 동분서주했던 정신과 의사 정혜신(55)씨가 책 ‘당신이 옳다’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활동을 정의하며 한 말이다.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의 매뉴얼로 읽히기를 원하며 이 책을 내고 두 달 동안 그는 북토크를 겸한 심리적 CPR워크숍을 34차례나 했다. 이틀에 한 번 꼴이라는 횟수보다, 속초에서 제주까지 전국을 종횡무진한 거리보다 놀라운 것은 워크숍 참여자 등이 책을 읽고, 책의 매뉴얼을 따라 해보고 보내온 “놀라운 반응”이었다고 한다. 정씨를 13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나 그의 공감법에 대해 들었다.

-국가폭력 희생자 등 트라우마 피해자를 만나는 일을 오래 해왔는데 계기가 있었나.

“2004년쯤 ‘진실의힘 재단’ 박동운 이사장을 만난 뒤부터다. 박 이사장은 이른바 ‘진도간첩단’ 사건 주범으로 몰려 17년 옥살이를 했다. 2009년 무죄 판결 받기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던 분이다. 주위 도움으로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데 이 분이 억울한 마음이 너무 강해 일이 진행이 안 돼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만났더니 마음 속 분노가 너무 심했다.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한 의사소통이 되는 최소한의 일상성이 확보돼야 법적인 문제 해결도 시도해 볼 수 있는 거다. 관련 국회청문회를 도우며 그 분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으며 국가폭력의 진상을 처음 생생하게 접했다. 이후 같이 끌려간 그 분 가족, 감옥 동지들을 만나고 상담하며 이 일을 깊이 마음에 두게 되었다.”

-낮에는 생업으로 기업 최고경영자나 임원, 법조인, 정치인도 만난다는데.

“IMF 위기 직후 살아남은 직장인들의 심리를 연구한 적이 있다.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다행이고 행복할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그 결과를 보고 기업에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의뢰가 많았다. 고도의 정신노동, 경쟁의 정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에너지 소모, 내면 이야기를 듣고 상담했다. 진료 현장이야 늘 있지만 이런 일은 흔하지 않아서 그때까지 15년 하던 일을 접었다. 본질은 똑같다. 사람의 내면을 듣고 치유하는 활동이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박동운 선생을 만났다. 낮에는 기업인 등을 만나고 밤에는 트라우마 피해자들을 만나는 생활을 15년쯤 이어오고 있다.”

-힘들지 않았나.

“사실 그 이전이 더 힘들었다. 정신의학적 기법은 많지만 그 틀로 사람들이 다 설명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늘 했다. 전문의가 된 뒤에도 내가 잘 하는 건지 확신이 없었다. 반대로 진료실 바깥에서 그 고민이 풀리는 경험을 하면서 전문가의 성채 안에서 정신의학의 틀로 사람을 환자로 보는 것의 한계를 깨달았다.”

-책에서 ‘공감’이 중요하다고 누누이 말한다.

“저 사람은 살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 죽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트라우마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그런 사람도 살게 만드는 힘의 핵심이 ‘정확한 공감’이라는 것을 알았다. 보통 공감을 따스하고, 포근하게 대해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잘못이다. 과녁을 찾아 정확하게 거기에 퍼부을 때 지옥에 빠진 사람들마저 살려내는 치유제가 바로 공감이다.”

-다들 공감이 무엇인지 대충은 안다고 여긴다.

“쌍용차 해고자 이야기를 듣고 눈물 흘리는 것이 공감이 아니다. 언뜻 젊은 사람들이 해고가 됐으면 먹고 살려고 다른 일로라도 돈을 벌어야지 어렵다는 말만 하고 다니냐며 이상해 할 수 있다. 그러면 물어봐야 한다. 이유를 듣고, 억울해서 그러는 거구나 하고 이해하는 만큼 공감하는 것이다. 납득하지 않으면서 고개 끄덕이는 것은 감정노동일 뿐이다.”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공감하는 것인가.

“우선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한다. 남편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다. 연봉도 많고 남들 부러워하는 직장을 갑자기 그만둔다니 공감할 수 없다. 왜 그러냐고 물어봐야 한다. 책 제목 ‘당신이 옳다’는 ‘당신이 어떤 마음이 들었을 때는 이유가 있다’는 의미다. 퇴사 결정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유는 물어봐야 한다. 왜 그러냐, 언제부터 그랬냐, 그랬구나 하면서 듣다 보면 사정을 어느 정도 알게 되고 그러면 화도 짜증도 덜 난다. 말하는 사람 역시 좀 더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계속 묻기만 하는 게 공감의 전부는 아닐텐데.

“물론 남편이라고 처음부터 모든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집안 사정 뻔한데 좀 힘들게 하는 상사가 있고, 퇴사 후 사업계획도 있고 하는 정도의 대답이면 공감이 잘 안 갈 수 있다. 이해가 안 되면 더 물어봐야 한다. ‘그래? 그 상사 어떤 사람인데? 그 동안 당신한테 어떻게 했는데?’ 하고 구체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관심을 보이고 들으려는 태도를 표시하면 남편도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이런 개별 존재의 핵심에 대한 궁금증에 반응해 남편의 입에서 상사가 ‘당신이 지금까지 한 게 뭐야’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와 ‘그럼 그만두지 뭐. 사업도 하고 싶고’ 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럴 때 ‘그 상사는 당신을 개무시한 거네, 투명인간 취급한 거네’ 하면서 ‘그 말 듣고 당신 마음이 어땠어?’ 하고 물어보는 거다. 이 질문이 바로 공감의 과녁이다. ‘내가 무가치한 존재 같았어, 너무 모욕감을 느꼈어’ 하는 말이 나오면 정확한 공감의 지점까지 들어간 거다. 감정이 나와야 존재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는 거다. 그때 ‘그랬구나, 당신이 그런 상황이었구나, 요새 얼굴이 안 좋았던 게 그 때문이었구나’ 하고 듣는 사람도 다 알게 된다. 다른 말 필요 없이 ‘그랬구나, 나는 몰랐네’ 하는 식으로 퍼부어주면 된다. 그 말이 치유의 전부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드러난 존재의 핵심을 어떤 토도 달지 않고 온전히 수용하는 어마어마한 말이다. 사람을 살리는 말이다. 정확한 과녁을 찾아 존재의 핵심까지 들어가 평가 재단하지 않고 그 모두를 수용하는 것이 공감이다.”

-그런 공감을 거친 결론이 회사를 그만 두는 거라면, 그것을 잘한 거라 평가할 수 있나.

“그런 공감을 받으면 사람은 가장 합리적인 상태가 된다. 가장 객관적이고 현실감각이 빛나는 상태가 된다. ‘당신이 물어봐 주기 전까지는 진짜 그 인간에게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미처 몰랐는데 이제 알겠네, 내가 너무너무 모욕당했네, 내가 너무 억울해서 그랬던 거 같아’ 하면서 자신의 상황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보인다.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일의 연속이다. 내 마음이 분명히 규명되지 않았는데 자꾸 다른 해석, 다른 일, 다른 관계로 이어지면 또 다른 상처가 생길 뿐이다.”

-올바른 공감을 머리로 알더라도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잘 안 될 수 있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 때문이다. 우리는 늘 좋은 충고와 조언을 하려고 한다. 상황이 어려우니까 선의로 이래 봐라 저래 봐라 한다. 그것만 안 해도 충분하다. 상대가 어떤 맥락에서 고민을 하는지 알기 전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거다. 우선 알아야 한다. ‘언제부터 고민했는데, 진짜 고민이 뭔데?’ 해서 더 구체적으로 알기 전에 던지는 충조평판을 들으면 상대는 ‘그래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지’ ‘저 사람이 내 마음을 모르네’ 하는 확인만 할 뿐이다.”

-주변을 보면 너나 없이 다 아프다. 누가 누굴 위로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치유의 문턱이 결코 낮지는 않다. 알 수 없는 게 사람 마음 아닌가. 어떤 엄마가 중학교 2학년인 아이의 심리를 도대체 모르겠다고 한다. 심리학 책을 뒤적여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중2의 보편적인 심리를 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 아이와 소통해서 지금 그 아이의 속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에게 물어야 한다. 모든 말과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 아이한테 집중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으로 ‘그때 어떤 심정이었는데’가 나오고 ‘그랬구나’ 하면 되는 거다.”

-‘적정기술’에 빗대어 ‘적정심리학’을 표방했다.

“세상살이의 고민은 심리학, 상담 공부한다고 풀리는 것이 아니다. 정신의학은 특정질환을 치료하려고 발달한 것이어서 모든 사람을 일단 환자로 본다. 하지만 우리 일상은 그와는 다르다. 내 아이와 전쟁 치르듯 하는 것은 정신질환자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의 문제를 내 일상에서 전문가에게 묻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추구하자는 뜻이다.”

그가 이른바 어버이연합 노인과 현장에서 마주한 경험이 책에 실려 있다.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던 곳에서 일군의 노인들이 서명대 집기를 부수고 유가족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 그 고통스러운 소동이 끝난 후 행패를 부리던 노인 중 한 명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 나는 그 소란에 대해서 묻지 않고 ‘고향이 어디세요?’ 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내와 살았던 시절로 갔다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들과 며느리 이야기로 옮겨왔다. 거리에 버려진 부서진 장롱 같은 그의 삶을 듣다가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한참 만에 노인이 불쑥 말했다. ‘내가 아까 그 아이 엄마들한테 욕한 건 좀 부끄럽지.’ ‘그런 마음이셨군요. 그러셨군요.’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사과를 받고자 시작한 얘기가 아니었지만 노인은 사과를 했다. 사과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노인의 마음속에 미안함이 조금씩 고이고 있다는 걸 대화 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정혜신의 ‘공감 매뉴얼’이 아픈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꿔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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