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기대 속에 문 연 ‘청와대 극장’
나팔소리만 요란한 3류 영화관 퇴락
김정은 답방, ‘알맹이 없는 공연’ 곤란

정치공간은 극장이다. 대중의 지지를 겨냥해 정교하게 기획되고 극적으로 가공된 메시지들이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공연’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여름, 새 정부의 ‘청와대 극장’은 한 컷의 싱그러운 영상으로 개막됐다. 5월의 맑은 햇살이 청와대 경내에 가득했다. 녹음 사이로 하얀 셔츠에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문재인 대통령과 수석비서관들이 어울려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든 채 거닐었다. 대통령에겐 밝고 순수한 에너지가 감돌았고, 수석비서관들은 훤칠하고 기운차 보였다.

찰나의 이미지가 수백 마디의 웅변보다 강력할 때가 많다. 그 때의 ‘차담회’ 영상은 새로 개막한 청와대 극장의 성공적인 프롤로그가 됐다. 찬사가 이어졌다. 군림하지 않는 권력, 쿨(cool)함과 자유로움, 합리주의 같은 메시지의 광휘 속에서 새 청와대는 금방 뽑은 신차처럼 힘차고 정교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부풀렸다.

하지만 불과 1년 반이 지난 지금, 청와대 극장은 프롤로그만 그럴싸한 형편없는 3류 영화로 전락한 느낌이다. 최근 40%대로 가라앉은 문 대통령 지지율은 싸늘해진 관객의 시선을 반영한다. 뭔가 부단히 애는 쓰는 것 같은데 관객들의 감동지수는 뚜렷이 하락하고 있다. 싱그러움을 잃은 청와대 극장은 어쩌면 시청률을 위해 충격적 소재와 막장 스토리를 멋대로 버무린 TV 드라마처럼 타락할지도 모른다.

청와대 극장은 정치와 정책, 그리고 관련된 상징과 메시지들이 다양하게, 유기적으로 공연되는 종합공연장이다. 제작자는 대통령이고, 감독은 임종석 비서실장쯤일 것이다. 탁현민 행정관을 청와대 극장의 숨은 지휘자처럼 여기는 시각도 있지만, 그는 종합공연에서 몇몇 인상적인 이벤트를 담당하는 실무자일 뿐이다. 따라서 청와대 극장 위기의 대부분 책임은 대통령과 비서실장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 돌아보면, 청와대 극장의 위기는 무엇보다 ‘보여주기’의 원칙이 없었던 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청와대 극장은 궁극의 정치공간인 만큼 그곳의 ‘공연물’들은 가장 정련되고 신뢰할 만 해야 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이상했다. 트럼프 대통령 만찬 선물로 뜬금없이 일본풍의 돌그릇을 내놓곤 “돌그릇은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듣보잡’ 설명을 거리낌없이 내놨을 때나, 대통령 부인을 ‘유쾌한 정숙씨’로 부르는 억지스런 별명이 등장했을 때부터 뭔가 지나치게 들떠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극적 효과에 대한 욕심은 ‘막간극’을 넘어 중차대한 국정 공연에도 작용했다. 지금 와서는 애써 ‘탈원전’이 아닌 ‘에너지 전환 정책’이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고리 1호기 영구 폐쇄’라는 충격적 공연을 펼치며 탈원전을 웅변한 무대가 바로 청와대였다. 그런 식으로 청와대가 앞장서 북 치고 장구 치며 떠들었다가 뒷감당 못해 쩔쩔매고 있는 공연물들은 일자리 상황판부터 최저임금에 이르기까지 끝도 없다.

극적 효과에 대한 과욕 못지않게 청와대 극장의 위기를 부른 또 하나의 원인은 ‘착하지만 알맹이 없는 뜬구름 잡는 얘기의 반복’이다. 문 대통령의 공연은 늘 정의와 평등, 평화와 통일을 노래하는 데서 끝난다.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을 치면 “다 같이 잘 사는 게 좋은 것 아니냐”고 했고, 기업들이 비명을 지르면 “공정한 나라 반드시 만들겠다”는 식이다. 내실 없이 좋은 말만 되풀이 하니, 그게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얘기다.

청와대는 요즘 극장의 흥행을 되살릴 카드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답방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사실 남북문제야말로 내실이 있든 없든, 역대 모든 정권이 청와대 극장의 공연을 시도했을 만큼 가장 매력적인 소재였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모든 국민이 쌍수로 환영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냉정해진 국민은 김 위원장의 답방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식의 감성적 이벤트에 그친다면 더 이상 청와대 극장에 대한 기대를 접을지도 모른다. 이번 만이라도 제발 절제되고 신중한 공연을 준비하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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