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사고의 힘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ㆍ김정은 옮김
까치 펴냄ㆍ320쪽ㆍ1만8,000원
뛰어난 예술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두고 우리는 천재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그가 사실은 ‘딴짓’하기의 명수였다면 어떤가. 그는 2년(1495~1497년)에 걸쳐 완성한 걸작 ‘최후의 만찬’을 작업할 때 수도원장에게 싫은 소리를 늘 들어야 했다. 한참씩 작업을 중단할 때가 많았다. 미술사학자인 조르조 바사리에 따르면, “수도원장은 짜증스러울 정도로 끈질기게 다빈치에게 작업을 끝내줄 것을 요청”했다. 한번 생각에 몰두하면 반나절을 그냥 보내버리는 다빈치의 이상한 행동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다빈치는 수도원장에게 “위대한 천재는 때로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에 더 많을 것을 성취한다”는 말로 설득했다. ‘최후의 만찬’은 르네상스 전성기의 가장 뛰어난 성과로 평가받은 작품이다. 그 이유는 독창성이다. 당시 피렌체에서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의 그림이 많았는데, 다빈치는 새로운 형태를 시도했다. 배반의 상징인 유다를 예수의 열두 제자 무리 속에 넣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다른 화가들은 유다를 건너편에 동떨어지게 놓고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창조적인 사고로 걸작을 탄생시키기 위해, 어쩌면 다빈치는 ‘멍 때리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는지 모를 일이다.
책은 다빈치의 일례를 소개하며 “창밖을 바라볼 때 우리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작업할 때 남들과 다른 참신한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건 뇌에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어서다. 즉 “뇌가 빈둥거릴 시간을 주어야” 유연한 사고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법칙은 업무를 처리할 때도 발휘된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기획이나 참신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회사들이 많을 것이다. 책은 생각을 쥐어짜 내는, 의식을 집중한 상태에서는 유연한 사고가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느긋한 마음은 참신한 생각들을 살피지만, 분주한 마음은 가장 익숙한 생각들을 불러 모은다. 그런 생각들은 대개 재미가 없으니 퇴짜맞기 일쑤다.
기술의 진보 역시 유연한 사고를 방해한다. 스마트폰으로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고, 이메일을 확인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성인의 58%가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18~24세의 연령대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110건의 문자를 주고받는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유연한 사고는 정말 먼 나라 얘기일까. 뻔한 얘기지만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비생산적인 시간, 즉 멍 때리는 시간이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뇌가 휴식을 취하면서 서로 다른 정보를 연결해 새로운 연상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복잡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진척이 없을 때는 생각을 몰아내라고 말한다. 한 시간마다 잠시 물을 마시고 오는 것도 도움이 된단다. 이제 뇌에도 정기적인 휴식시간을 줘야 할 시대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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