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구촌 곳곳의 군사 분쟁 현장들을 들여다보면 최근 들어 점점 짙어지는 경향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부군이나 반군, 민병대뿐 아니라, 이른바 ‘용병 업체’로 불리는 민간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ㆍPMC)의 활동 폭이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2회에 걸쳐 이들의 세계를 집중 조명합니다.

■글 싣는 순서
<상> 용병의 산업화, 전쟁의 민영화

<하> 용서받는 용병들, 그들은 무죄인가(가제)

2004년 4월 이라크 나자프에서 미군 및 스페인군과 함께 중요 시설 방어 임무를 수행하던 미국 민간군사기업(PMC) ‘블랙워터’ 소속 용병(가운데 두 명)들이 이라크 시위대와 총격전을 벌이던 중, 어딘가로 황급히 달려가고 있다. 이라크전 참전을 계기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블랙워터는 PMC의 대명사 격인 업체다. 정부와 계약을 맺고 전쟁터에 소속 직원, 다시 말해 ‘용병’을 보내 중요 물자 수송이나 요인 경호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PMC는 오늘날 지구촌 분쟁지역 곳곳에서 활동하며 ‘전쟁의 민영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나자프=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시리아 동부 데이르에조르시 중심가에서 경비 업무를 수행 중인 러시아 군인들. 시리아 내전에는 러시아 정부군뿐 아니라 민간군사기업 ‘와그너’ 소속 용병들도 참전 중인 사실이 드러났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들의 활동뿐 아니라 존재마저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데이르에조르=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 국경청장 페트로 치기칼은 ‘16~60세 러시아인 남성’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5일 전, 러시아가 크림반도 인근 케르치 해협에서 우크라이나 해군 함정을 나포하자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튿날인 지난달 26일 계엄령(발효는 11월28일)을 선포했다. 곧이어 러시아 남성 입국금지라는 강수까지 둔 것이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이 조치에 대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민간군대를 결성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가 언급한 ‘민간군대’란 러시아가 동원할 가능성이 큰 민간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ㆍPMC)의 계약직 사병들, 다시 말해 ‘용병’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대표적 PMC인 와그너(Wagner)의 용병들은 2014년 2~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 당시 처음 등장했다. 이어진 동부 돈바스 전쟁에서도 와그너 용병들은 러시아군,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친러 반군인 ‘노보로시안 연합군’에 편입돼 싸웠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역시 PMC 활동이 왕성한 나라다. 지난 4월 ‘경찰순찰특공대’ 출신 정치인 예브게니 다이데이는 이미 존재하는 PMC를 차라리 합법화하자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와 관련, BBC우크라이나 서비스는 지난 4월 5일 자 보도에서 다이데이의 의미심장한 발언을 전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의 전문가들’이 우크라이나의 PMC 합법화 법안 작성에 도움을 줬다고 했다. 나아가 ‘그 전문가들’은 미국 PMC 중 하나인 ‘아카데미(Academi)’를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지역으로 끌어들일 계획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카데미는 미국의 악명 높은 PMC ‘블랙워터’가 각종 스캔들을 거치면서 세탁한 이름이나 마찬가지다. 다이데이의 말을 종합하면,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은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대립 이상의 갈등 구도를 보여준다. 게다가 다국적 PMC들의 충돌 가능성마저 내포돼 있다.

PMC 용병들이 여러 전쟁터에 모습을 드러낸 건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한 전쟁터에서 상호 적대적인 주체들 모두가 용병들을 동원, ‘PMC 용병 간 대결’이 펼쳐지는 상황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나긴 용병의 역사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2004년 3월 이라크 라마디에서 미국의 용병업체 ‘블랙워터’ 소속 직원(왼쪽 사복 입은 두 명)들이 이 곳을 방문한 폴 브레머(가운데) 당시 이라크 최고행정관(미국의 이라크 군정 책임자)을 경호하면서 수행하고 있다. 라마디=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용병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랜 현상이다. PMC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통하는 피터 W. 싱어는 저서 ‘전쟁 대행 주식회사(Corporate Warriors)’에서 “고대 이집트부터 영국 빅토리아 시대까지, 역사상 모든 제국이 계약직 사병을 이용해 왔다”고 기록했다. 그는 “용병은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군”이라고까지 적었다..

20세기 들어 용병의 자리는 ‘프리랜서로 뛰는 전직 군인’이 채우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이들이 전쟁산업 현장의 ‘구직자’로 쏟아져 나온 건 냉전 해체 이후에 두드러졌다. 정규군의 대대적 감축은 전투력을 갖춘 ‘군인 출신 실업자’의 대량 배출로 이어졌고, 이들을 재흡수한 게 바로 PMC였던 것이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전통적 개념의 ‘용병’은 오늘날 ‘PMC 소속병사’로 진화했다.

다국적 기업의 아프리카 대륙 착취, 이 곳에서의 PMC 문제를 집중 분석한 책 ‘떼돈 벌기: 기업 활동에 무력이 쓰이는 방식과 이유’의 저자인 마들렌 드로한은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이그제큐티브 아웃컴즈(EO)’가 PMC 스타일의 최초 용병기업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EO는 아프리카 백인들로만 구성된 군 조직 ‘로데시안 라이트 인펀트리(RLI)’가 1980년 해체되자 소속 병사들을 흡수해 1989년 창립됐다. 사실상 RLI의 후신인 셈이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분리정책) 정권 등 백인우월주의 체제에서 복무했던 백인 용병들은 EO라는 조직으로 재규합된 뒤 1990년대 앙골라 내전, 시에라리온 내전 등에 개입했다. 드로한은 다음과 같이 답변을 이어갔다. “정치적 커넥션은 PMC의 계약 수주에 중요하다. 미국의 거대 PMC들이 미 국방부 또는 국무부의 계약을 따내는 건 바로 이런 정치적 네트워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PMC가 촉매제 역할을 하는 ‘전쟁 민영화 현상’은 군사ㆍ정치적 권력이 결탁한 구조 속에서 진척되고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민간군사기업으로 꼽히는 미국의 ‘블랙워터’를 설립한 에릭 프린스가 2007년 2월 미 의회에 출석해 정부와 맺은 계약과 관련해 증언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실제로 대형 PMC 창립자나 최고경영자(CEO)의 면면을 보면 전직 군인이거나, 정보국 또는 국방부 관료 출신이 많다. 9ㆍ11 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터’를 누비며 PMC계 재벌이 된 블랙워터를 보자. 이 회사를 만든 에릭 프린스는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장교 출신으로, 2016년 미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 캠프에 25만달러를 후원하는 등 정치권 로비 능력이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누이 벳시 디보스는 논란 끝에 트럼프 행정부에 교육장관으로 입각했다.

미국의 다른 PMC ‘다인코스(DynCorps)’의 현 최고경영자(CEO)인 조지 C. 크리보도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중령으로서 이라크 주둔 연합군의 대변인을 지냈다. 다인콥스의 연간 수입 30억달러 중 96%는 미 연방정부와의 계약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러시아의 시리아전 참전을 계기로 외부에 알려진 러시아의 와그너는 또 어떤가. 드미트리 우트킨 대표는 러시아 군 정보국 출신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의 자금줄을 쥔 사업가 에브게니 프리고진 역시 ‘푸틴의 셰프’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깝다.

러시아는 자국 PMC의 지역 분쟁 참전 사실은 물론, 용병들의 존재조차 시인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PMC는 물론, 사병 조직 자체가 러시아 헌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러시아의 사회민주당 격인 ‘정의로운 러시아당’이 PMC 합법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크렘린궁과 국방부, 외교부 등 거의 모든 정부 부처가 강력히 반대했다. 그럼에도 PMC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권력층과 PMC 간 은밀한 네트워크를 드러내고 있다. 와그너 등 자국의 PMC 활동을 파헤치던 러시아 언론인 4명이 잇따라 목숨을 잃은 현실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와그너 용병들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계기는 올해 2월 시리아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전투였다. 2월 7일 시리아 북부, 유전과 가스가 풍부한 지방인 데르 엘 조르에서 와그너 병사들이 쿠르드민병대와 미군의 공동관할구역에 있는 정유공장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은 즉각 공습으로 보복했고, 그 결과 최소 수십 명, 최대 200명에 달하는 와그너 소속 병사들이 숨졌다. 러시아는 이를 두고 “러시아 국적자들이 사망했다”고만 표현했다.

이 전투는 세계 최대 군사 강국이자 용병 산업의 ‘양대 선진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탈냉전 이후 가장 심각하게 충돌한 사례로 기록됐다. 러시아 언론 ‘더 벨’은 와그너의 쿠르드 지역 정유공장 공격이 묘한 타이밍에 행해졌다고 전했다. 와그너 물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소유한 다른 회사이자 와그너의 자매기업으로도 간주되는 ‘유로 폴리스’가 시리아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이 지역 유전개발권을 따낸 직후 자행됐다는 것이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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