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일본 기업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1억 원을 배상하라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5년 3개월 만에 나왔다. 판결이 오래 걸린 배경에 사법부와 행정부의 재판 거래가 있었다는 의혹이 짙어지며, 이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0월 30일 이춘식 씨 등 일제강제 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은 이 판결이 재판거래 의혹 수사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평가했다.

재판거래 의혹은 양승태 사법부가 권한 확대를 위해 박근혜 행정부와 재판을 두고 거래를 했다는 의혹이다. 박근혜 정권의 정책과 관련된 재판에서 정부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지 않도록 두 기관이 사전에 상의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을 설치하거나 외국에 있는 한국 행정기관에 파견되는 법관 수를 늘리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비위’를 맞춰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사법부가 세 차례 자체 조사를 벌인 끝에 사법부 내부 문건을 공개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사건 역시 공개된 문건 중 하나에 이름을 올린 재판이었다.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이란 문건에,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관심사안으로 이 재판이 언급돼있다. 문건에는 “원론적 차원에서” 법원이 재판에 협조하도록 노력하겠다고만 적혀있지만, 검찰 수사가 진행되며 두 기관이 원론 차원 이상으로 협조한 정황이 드러났다.

청와대 공관에서 당시 비서실장과 외교부장관, 법원행정처장이 휴일에 만나 대통령의 의사를 전해 들은 것이 대표적이다. 2013년 12월과 2014년 10월에 각각 차한성ㆍ박병대 전 대법관이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부 인사를 만나 강제징용 소송을 지연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일제 강제징용 민사소송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지시로 비서실장이 사법부 고위 관료와 만나 재판을 두고 논의를 했다는 뜻이다. 이에 연루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구속영장을 발부 받은 상태다. 이달 7일 차한성 전 대법관이 비공개로, 19일엔 박병대 전 대법관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김현종 기자 choikk999@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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