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주주로 올라서 경영참여 본격화
서울 중구 KAL 대한항공 빌딩. 홍인기 기자

국내 기업지배구조개선 전문사모펀드(PEF) 운용사 케이씨지아이(KCGIㆍKorea Corporate Governace Improvement)가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9%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며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토종 사모펀드가 한진그룹과 같은 국내 대형 기업집단의 경영에 간여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로,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갑질, 밀수 등 일탈 행위로 사회적 지탄뿐 아니라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한진칼은 15일 유한회사 그레이스홀딩스가 자사 지분 9%(532만2,666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그레이스홀딩스는 KCGI가 조성한 PEF인 KCGI제1호사모투자합자회사가 100% 지분을 보유한 특수목적회사(SPC)다. 앞서 한진칼 지분 4.97%를 보유하고 있던 KCGI는 14일 지분 4.03%를 추가로 장내 매수하면서 주식 대량 보유 공시 대상(지분율 5% 이상)이 됐다. 14일 KCGI는 한진칼 주식 238만3,728주를 주당 2만4,557원(총 585억원)에 사들였는데 이 영향으로 한진칼 주가가 12.58% 뛰기도 했다.

KCGI는 이로써 조양호 회장 일가(지분율 28.95%)에 이어 한진칼 2대주주로 올라섰다. KCGI는 한진칼 지분 보유 목적으로 “현재 세부 계획은 없지만 장래에 회사의 업무집행과 관련한 사항이 발생할 경우에는 임원의 선임ㆍ해임 또는 직무정지, 정관ㆍ자본금 변경, 배당 결정, 회사 합병ㆍ분할, 주식의 포괄적 이전 등의 행위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진그룹은 2014년 ‘땅콩회항’ 사건 이후 여러 차례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이 불거져 왔고 최근에는 사무장 약국을 불법 운영했다는 혐의까지 받는다.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오너 일가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그룹이 동요하는 상황인 만큼, KCGI가 국민연금(8.35%), 크레디스위스(5.03%), 한국투자신탁운용(3.81%) 등 대주주들과 규합해 적극적인 경영 개선을 요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앞서 국민연금은 한진칼이 29.62% 지분을 보유한 대한항공에 공개 서한을 보내고 경영진과의 비공개 면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나아가 참여연대는 지난 8일 국민연금에 공개 서한을 보내 ‘차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이사후보 연임에 반대할 의사가 있는지’를 질의하는 등 지배구조개선과 관련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분위기가 조성된 상황이다.

국내 사모펀드가 대기업 지분을 사들이며 경영권 참여 의지를 내비친 것은 이례적이다. 8월 플랫폼파트너스가 맥쿼리인프라의 지분을 사들인 뒤 자산운용사 교체를 요구하고 지난해에는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이 현대홈쇼핑, 아스트라BX 등에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등 토종 사모펀드의 활약이 가시화하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평가다. 다만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9월 발표한 사모펀드 제도 개편안에 따라 PEF의 경영 참여를 제한하는 규제가 사라지면 국내 투자자들의 주주권 행사가 탄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KCGI는 과거 동양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에서 일하며 기업지배구조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 온 애널리스트 출신 강성부 대표가 올해 8월 설립한 회사다. 회사 이름은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을 뜻하는 단어의 첫 글자를 따 만들었다. 9월에는 LIG넥스원과 공동으로 코스닥 상장사인 이노와이어리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강 대표는 KCGI 설립 전에는 사모펀드 LK투자파트너스의 대표로 일하며 요진건설, 현대시멘트 등에 투자하기도 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