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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고트호브에서 온 편지

입력
2018.11.16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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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핏기가 남아 있는 도마를 좋아하고 발목이 부러진 새들을 주워 꽃다발을 만들어요. 기괴하다고 여겨지나요? 드물게는 연민의 마음이라고 느껴지나요? 양쪽 다 내 취향일 텐데요. 무엇보다 나는 생생함에 함께 하고 싶었던 거예요. 선명함만이 생생함은 아니죠. 호수, 발자국, 목소리…희미함에 가까이 더 가까이, 이 또한 생생함이에요. 밖의 순간과 내 시선을 빈틈없는 한 호흡처럼 일치시킬 때, 솟아오름, 생생함이라는 생동감이에요.

오로지 한 점이었다가 녹는 눈부심으로 깨끗한 없음으로…한 송이의 “새하얀 몰락”을 내내 보면서 반대편이라는 말을 좋아하게 됐어요. 선명함과 희미함 사이의 신비를 경험했거든요. 빈 액자로 풍경이 돌아오는 중이라는, 물고기는 사라졌어도 모아둔 비늘에는 여전히 새벽이 들어 있다는, 반대편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무릎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나의 반대편에서 당신은, 당신이 초대하지 않은 내가 쓴 편지를 읽고 있어요. 당신의 반대편에서, 샛노란 국자로 죽은 새의 무덤인 허공을 휘휘 젓고 있는 나는 빙하로 둘러싸인 그린란드(Greenland)에 살아요. 그린란드의 수도 고트호브는 ‘바람직한 희망’이라는 뜻이지요. 한국보다 12시간이 느린 고트호브의 지금 날씨는 눈, 영하 6도. 이 편지는 당신의 오늘에 먼저 도착해 있는 생동감이에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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