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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잡월드 사태가 시사하는 것

입력
2018.11.15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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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어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상시ㆍ지속적 업무 및 생명안전 관련 업무는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하면서 인천국제공항에서 설파한 내용이다. 그리고 올해 5월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2단계 기관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 라인’에서도 상시ㆍ지속적인 업무에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당연한 관행이 되어야 하고, ‘사람을 채용할 때는 제대로 대우하여야 한다’는 기본 당위에 입각하여 '공공부문의 고용 및 인사관리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또한 ‘자회사 방식’의 경우 공공기관은 이미 자회사로 운영되고 있는 점을 고려, 또 다른 자회사로의 전환은 ‘원칙적’으로 불인정한다라는 가이드라인을 정하였다. 그러나 10월 현재, 이용득 의원이 공공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숫자는 33개 기관 3만2,514명으로서, 이는 공기업ㆍ준정부기관의 파견ㆍ용역 비정규직 중 정규직 전환이 확정된 5만9,470명의 절반이 넘는(54.7%) 비율이다. 본말전도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졌나 보다.

한국잡월드는 대한민국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어린이ㆍ청소년들의 건전한 직업관 형성과 진로 선택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 직업체험관이다. 그러나 정규직 50여 명과 비정규직 338명으로 이루어진 기형적인 조직으로 한국잡월드의 핵심 업무인 어린이ㆍ청소년 직업 체험학습을 직접 지도하는 강사 275명이 비정규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애초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 및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취지가 담겨 있다. 그리하여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 한국폴리텍 대학 등에서는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실천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잡월드의 경우 올해 3월 파견ㆍ용역 체험강사의 정규직 전환이 논의되면서 직접고용은 애초부터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감당이 되지 않는다며 자회사 설립을 통한 우회 고용 방식의 꼼수를 쓰는 모습이 문 대통령이 말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의 애초 의도인가. 그렇다면 속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사측 9명, 비정규직 측 9명, 전문가 2명으로 이루어진 노ㆍ사ㆍ전문가 협의체에서 자회사의 정규직 간접고용을 결정하였으며, 비정규직 대표 9명 중 7명이 찬성하였다’라는 모 일간지의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진실을 알리지 않고, 표피적 사실만 알리는 ‘왜곡보도’이다. 추측컨대 해당 기사는 노ㆍ사ㆍ전 협의체의 비정규직 측 9명은 전환대상자 대표들을 의미하며 협의체 논의에 있어서 다수의 의사 결정이 있었음을 강조하려 한 듯하다. 그러나 이 9명 중 4명의 구성원이 업체 관리자들(소장, 팀장급)이며, 전체 전환대상자 338명 중 강사직군은 275명으로서 82%에 해당하지만 (정부의 ‘공공부문 2단계 기관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 라인’에 따라) 협의체 참석 위원으로 3명이 참석할 수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은 왜 적시하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2017년 1~3차 회의까지 강사직군 위원들은 참석은커녕 개최사실조차 통보받지 못하였다. 과정은 공정하였는가.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직원과 똑같은 급여를 달라고 무작정 떼쓰는 것이 아니다. 본인들이 한국잡월드에서 땀 흘린 경력만큼, 지금 일한 만큼 그리고 미래세대를 지도하는 업무에 걸맞은 대우를 원하는 것인데, 이를 ‘무서운 폭도’ 내지 ‘무임승차자’로 치부하는 모습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사실 지금 파업에 참가하는 한국잡월드분회 조합원들은 올해 4월 처음 노조를 만든, 구호나 집회가 낯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이 했던 공약과 약속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이들의 대화 요청을 거부하는 것이 정의로운 결과인가. 이들이 왜 이렇게 거리에 나서게 되었는지 문 대통령께서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이경재 변호사ㆍ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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