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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만들면서 나눔과 봉사도 찰떡같이 배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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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만들면서 나눔과 봉사도 찰떡같이 배웠지요”

입력
2018.11.13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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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기부하는 석인경씨를 칭찬합니다

석인경 대표가 매장에 남은 떡국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강은주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석인경 대표가 매장에 남은 떡국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강은주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대한민국떡방은 미리내가게다. 떡방 벽면에 손님들이 남긴 후원내역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강은주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대한민국떡방은 미리내가게다. 떡방 벽면에 손님들이 남긴 후원내역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강은주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대구 달서구 도원동에 자리 잡은 11평 남짓한 떡 가게에는 해님 달님 속 호랑이가 살고 있다. 손님들은 떡 사러 왔다가 떡 주고 간다. 암만 봐도 무서운 호랑이는 없다. 손님들은 기분 좋게 자발적으로 떡을 남기고 간다. 남긴 떡은 모두 어려운 이웃에게 기증한다. 미리내가게다. 가게 벽면에는 손님들이 남긴 후원내역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석인경(47ㆍ달서구)씨는 매월 70여만원에 가까운 나눔과 후원을 9년 째 이어오고 있다. 정기후원금은 사랑의 열매, 굿네이버스, 천사나눔도시락에, 떡은 도원아동센터, 남구장애인주간보호센터, 상인복지관과 최근 시작한 홀트아동복지관 등에 후원한다.

“기부는 돈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은 소시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떡 한 개 한 개가 모여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부가 된다니까 손님들이 하나 둘 동참하더니 지금은 전국에서 후원이 들어옵니다. 나누면 행복해지는 마음을 이웃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석씨는 9년 전 떡집을 시작했다. 경기가 나빠져서 남편과 함께 하던 가내수공업(섬유업) 문을 닫은 후였다. 자식 둘은 아직 어렸고 생계가 막막했다. 그때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다. 옥포가 고향인 석씨는 어릴 적에 부모님이 방앗간을 했다. 아버지가 쌀을 찧고 가래떡을 뽑던 기억을 되살려 떡집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떡 만들기는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방앗간 집 딸이었지만 가래떡을 뽑을 때 김이 모락모락 나던 장면이 기억의 전부였다. 서울 지인을 찾아가 6개월간 일을 배웠다. 낮에는 무임금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를 했다. 돈이 없어 찜질방에서 6개월을 버텼다. 이후 남편도 설득해 6개월간 같은 과정을 거쳤다.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처럼 대구시소상공인지원센터에서 창업교육과 지원을 받았다.

다행히 떡은 잘 팔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서울에서 배워온 터라 기술면에서 화려했다.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서 맛도 좋았다. 대구에서 먹힌 것이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방법을 몰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에 문의를 했고 이를 계기로 후원을 시작했다. 대구시자원봉사센터에 월2회 쌀 케이크와 백설기100개씩을 보냈다. 기부를 시작해 보니 떡이 간절하게 필요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도원아동센터와 남구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 매주 떡을 제공하고 상인복지관에는 분기별로 어르신만수상차림 케이크를 지원했다. 홀트아동복지관은 매월 후원 및 미혼모아기돌잔치 케이크도 만들었다.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많아졌고 가야 할 곳이 점점 늘어났다.

“떡값을 생각하면 심장이 떨리죠. 쌀값만 후원한다 생각하고 떡은 재능기부라고 생각합니다. 주문이 많은 날에도 기부떡을 먼저 만든다고 남편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게 된 것이 떡을 만들면서였으니 감사의 마음으로 베풀자고 설득했습니다. 이제는 기부도 아예 주문장에 넣어서 하루 계획을 잡습니다. 각지에서 보내온 후원금은 SNS를 통해 공개합니다. 투명하게 운영합니다. 그래서 후원자들이 믿고 보냅니다.”

떡은 재료의 특성상 당일제작 당일판매가 원칙이다. 수작업이다 보니 일도 많고 고된 작업이다. 석씨는 여기에 오기까지 아프고 힘든 시기를 겪었다. 5년 전 가게 근처에 집을 마련했다. 집에 들어가던 날, 식구들이 모여 처음으로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남들에게 평범한 일상이 석씨의 가족에게는 특별한 일이었다.

“매일 새벽 3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해서 옥포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늘 잠들어 있었습니다. 서로 얼굴을 맞대어 본 적이 없었죠. 그동안 아침밥 한번, 도시락 한번 싸 준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지각을 밥 먹듯이 했구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납니다.”

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잘 성장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군대 간 큰아들은 가업을 이어받겠다고 했다. 큰아들만 생각하면 든든하고 힘이 난단다.

“큰 아들과 카톡을 통해 진로상담 및 떡에 대해 무궁무진한 대화를 나눕니다. 아들과 함께 공부하고 연구해서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결합된 디저트와 케이크를 만들 계획입니다. 그 아이템으로 떡카페을 열 거구요. 나중에 가족이 운영하는 떡카페에 놀러 오세요!”

강은주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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