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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느 중소기업인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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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느 중소기업인의 눈물

입력
2018.11.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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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결 중 인정 금액을 초과해 지급을 명령한 부분을 취소한다.”

지난달 31일, 대구지방법원 제4민사부에서 2016년에 일어난 화재에 대한 손해배상 항소 판결이 내려졌다. 피고석에 앉았던 A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친 까닭이었다. 그는 3년 동안 혼자서 관할 구청을 비롯해 2개의 경찰서와 진실공방을 벌였다. 아무도 그의 주장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고립무원의 지경에서 항소 끝에 30%의 승리를 따냈다. A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거대한 카르텔과 맞선 기분이 들었다”고 그간의 심경을 전했다.

불행이 시작된 것은 2016년 6월 29일이었다. A씨 소유의 창고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화마는 이웃건물을 집어삼켰고, 이웃건물주는 피해액으로 4억여원이었다. 손해를 부풀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건축물 자체였다. 화재 현장을 기록한 사진에 불법적인 사항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벽체와 지붕이 규정보다 얇았다. 외벽은 75T(75㎜)에 50T 규격이 패널을 덧대야 하는 패널은 75T밖에 없었고, 100T과 75T를 겹쳐서 시공해야 하는 지붕은 100T 패널만 올린 상태였다. 2016년 11월 민원을 제기하자 북구청은 제대로 된 현장 조사 한번 없이 감리자, 사용승인조사자, 검사 건축사 3명의 답변을 근거로 무혐의를 밀어붙였다.

2017년에 열린 재판 과정에서도 똑 같은 일이 되풀이 됐다. 1차 재판 중 법원이 북구청에 불법건축 여부를 물었지만 구청은 ‘무혐의’라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첨부자료에는 설계와 다른 75T라고 기재했다. 구청 스스로 모순된 문서를 낸 셈이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해 6월 선고공판에서 A씨가 1차 손해사정사가 책정한 전액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카르텔처럼 느껴지던 견고한 방어벽이 무너진 것은 항소 과정에서 이루어진 단 몇 시간의 현장조사였다. 재판부에서 타지의 전문가를 데려와 건축물과 화재 피해 물품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다. 전문 검사자들이 직접 외벽을 뚫어보고 두께를 측정했다. 그 결과 구청과 경찰 등에서 3년 동안 같은 내용으로 밀어붙인 무혐의 판단이 뒤집어졌다. 재판부는 ‘건물의 구조상 불이 옮겨 붙기 쉬워 그로 인해 손해가 확대되었다’고 명시하는 한편 ‘조색기’에 관련해서도 배상액을 3분의1로 제한했다.

대구 북구청이 업무처리를 제대로만 했더라면, 손해사정사가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했더라면, 이미 오래 전에 끝났을 송사였다. 다시는 행정기관 등의 부당한 업무처리로 중소기업인이 눈물을 흘리는 일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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