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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지금 미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입력
2018.11.12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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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재앙은 아니었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를 차지하지 못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지전능함이라도 가진 기분이었을 것이고, 그것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은 여전히 상원을 장악하고 있다. 대법원을 포함한 사법부가 더 우경화할 것이라는 의미다. 오하이오, 플로리다에서 공화당 주지사가 뽑힌 것은 이 선거구들이 2020년 트럼프 재선 기회를 높이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흔한 정치적 상투어는 “미국 정신을 위한 싸움”이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미국의 두 가지 다른 모습을 대변한다. 하나는 압도적으로 백인이면서 그다지 교육 받지도 젊지도 않고, 농촌에서 우세하며 남성이 많고 총기 소유에 자부심을 갖는다. 다른 쪽은 학력이 높은 편이며 젊고 도시에 살면서 인종적으로 다양하고 여성이 더 많고 총기 규제를 선호한다.

둘 다 자신은 애국적 미국인이라고 믿지만 애국심에 대한 생각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가 제임스 볼드윈은 “진보적” 애국심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을 가장 사랑했고 그래서 영원히 미국을 비판할 권리를 요구했다. 트럼프식 애국주의자들은 볼드윈을 반역자로 격하할 것이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자신들의 위대한 힘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모두 만들어내려는 유혹에 휩싸일 수 있다. 인종과 성 다양성, 트럼프에 대한 반감의 공유 같은 것 말이다. 이는 논리적인 태도일 수 있다. 트럼프는 매우 불쾌하며 지방에 사는 나이 든 백인보다 도시에 살며 젊고 백인이 아니며 지위가 높아진 여성이 지금의 미국을 더 대표한다는 민주당 주장은 정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다양성이라는 민주당 어젠다에 집중하는 것은 실수일 수 있다. 승리의 기세를 몰아 젊은 민주당원들은 트럼프 탄핵을 압박할 것이다. 그러나 탄핵심판권을 가진 상원이 공화당 손에 있는 한 하원의 소추는 사실 무의미하다. 소추되더라도 그는 여전히 대통령이며 공화당은 더 강하게 그를 변호하려 들 것이다.

의회에서 여성과 백인 이외의 인종, 비기독교인 대표가 많아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이는 분노하는 백인이자 공공연한 인종차별주의자인 지도자를 닮아가는 공화당과 비교할 때 신선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트펌프의 정체성 정치에 맞서 똑같이 공격적인 정체성 정치를 펴는 것은 정치 파벌주의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래서는 민주당이 이후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

민주당은 늘 분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젊은 급진파들은 주로 백인 기득권과 싸우려 든다. 지도자 뒤에서 완전히 단결된 것처럼 보이는 공화당도 문제가 있다. 공화당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던 자유주의 성향의 교육 받은 당원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밀려났다. 아마도 존 매케인은 그런 최후의 모히칸일 것이다.

민주당은 이런 상황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성과 인종, 성 정체성보다 경제를 앞세워야 한다. 공화당이 기록적으로 낮은 실업률을 자랑하는 호황기에는 순진한 전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빈부 격차가 커지는 것은 사업에 좋지 않다는 것을 전통적인 자유방임주의적 보수들은 알아야 한다. 헨리 포드는 차를 팔기 원한다면 사람들이 차를 살 수 있도록 그들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혼돈스러운 미국 정신과도 연관된 문제다. 미국의 정체성이란 어떤 사람에게는 원기왕성한 자본주의 기업과 사정 없는 개인주의, 물질적인 행복 추구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 배제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더 많은 사회 정의와 경제적 평등이다. 중간 선거에서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기후 변화 대처도 포함해야 한다. 지구온난화는 부자보다 가난한 자에게 더 해롭기 때문이다.

부자들을 위한 호황기가 있었다. 19세기 말 금박시대에는 미국 가계의 2%가 국가 전체 부의 3분의 1 이상을 소유했다. 상위 1%가 부의 거의 절반을 가진 지금은 더하다. 개혁기도 있었다. 정부는 부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이 대표적이다.

가진 자들을 위한 과세 유예보다 ‘뉴딜Ⅱ’가 필요한 시기인 건 분명하다. 재정 정책이 공정할수록 모든 사람의 생활 증진에 필요한 사다리와 공공재ㆍ서비스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이다. 모든 시민이 이용 가능한 건강보험은 문명사회의 상징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런 목표에 도달하려면 한참 멀었다. 높은 수준의 공공교육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회주의” 정책에서 얻는 이익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칫 비미국인이 될 수 있으니 반대로 투표하도록 설득 당하는 현실은 기괴하다.

평등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물론 자유주의자에게 호소력 있지만 그 때문에 중도파들이 떨어져나가서는 안 된다. 평등은 경제에도 이롭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트럼프의 거짓 인기영합주의는 러스트벨트와 시골 오지의 낙후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는 것을 분노에 찬 가난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알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없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줄 때다. 다가올 2년 간 민주당은 금권정치로는 모두가 잃을 뿐이라는 것을 핵심 메시지로 삼아야 한다.

이언 부르마 미국 바드칼리지 교수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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