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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나는 버스 탈출하며 ‘쿨’하게 교통카드 찍는... 여기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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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나는 버스 탈출하며 ‘쿨’하게 교통카드 찍는... 여기는 한국

입력
2018.11.02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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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스 솔라노 ‘한국에 삽니다’

'한국에 삽니다'를 쓴 콜롬비아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와 공연기획자인 부인 이수정. 이씨가 책을 번역했다. 솔라노는 부부 사이의 언어 장벽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침묵은 언제나 우리의 동맹이며, 자기 변호를 위한 보물이다." 은행나무 제공
'한국에 삽니다'를 쓴 콜롬비아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와 공연기획자인 부인 이수정. 이씨가 책을 번역했다. 솔라노는 부부 사이의 언어 장벽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침묵은 언제나 우리의 동맹이며, 자기 변호를 위한 보물이다." 은행나무 제공

외국인에게 관찰당하기,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미녀들의 수다’ ‘비정상회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TV 프로그램은 망하는 법이 없다. 외국인 출연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한국에 반했다며 호들갑을 떤다. 진심인지 연기인지 헷갈리지만, 아무려나.

‘한국에 삽니다’는 콜롬비아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41)가 쓴 한국 관찰 일기다. 호들갑을 싹 들어낸 게 책의 미덕이다. ‘스페인어권 최고의 젊은 작가 22명’(2010년ㆍ영국 문학잡지 ‘그랜타’)에 든 저자의 독특하고 촘촘한 눈으로 한국의 아름다움과 부끄러움을 다시 본다. 2014년 칠레에서 출간돼 2016년 콜롬비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소설문학상을 받았다. 부인인 공연기획자 이수정(37)씨가 번역했다. 둘은 2009년 결혼해 서울에 산다. 솔라노는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교수다.

부부는 2013년 보증금 500만원짜리 이태원 월셋집에서 서울 살이를 시작했다. 책은 그해 사계절의 기록이다. 부부는 가난했다. 월말이면 통장 잔고가 ‘0’을 찍곤 했다. 솔라노는 “글로 벌어 먹고살겠다는 미친 생각을 고수하는” 생활력 없는 이방인이었다. 작가 DNA 때문인지, 그는 낯설고 고된 삶을 즐겼다. “이것이 바로 콜롬비아에 살았을 때 그토록 바라던 것이다. 반대편 땅의 끝에 존재하는 것. 주름 속에 존재하는 것. 타인이 된 것 같은 기분 말이다.”

그런 쿨한 마음에 비친 서울의 첫인상은 쿨한 도시. 솔라노가 탄 버스에서 갑자기 시커먼 연기가 피어 올랐다. 승객들은 난리법석을 떨기는커녕 한 명씩 차례로 내리면서 죄다 교통카드를 찍었다.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용사를 만들어내야 할 듯하다.” 또한 아름다운 도시였다. “(여의도 윤중로를) 걸으면 수백만 장의 꽃잎이 비처럼 내려 인도를 뒤덮는다. 개화한 벚꽃 사이를 통과한 빛은 전의 빛과 다르다. 거의 천국에 온 기분이다.”

여느 외국인처럼, 솔라노도 ‘아줌마’라는 존재에 매혹된다. “청소, 식사에 자식, 부모들까지 도맡아 ‘빨리빨리’라는 리듬으로 귀신같이 동시에 해내는 존재, 그들의 어깨에 한국의 진짜 권력이 자리 잡은 존재, 눈동자에서 천둥이 치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 한국식 기독교엔 치를 떤다. “이 나라에서 기독교인들은 하나의 군부대다. 나에게 악마란 자신의 종교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바꾸려는 모든 형태의 것들이다.” 한국 에로영화는 기이하고, 성문화는 가식적이다. “여자들이 자고 있거나 술에 취한 도중에 섹스를 강요당한다. 또 많은 커플들이 섹스 전이나 후, 소주를 마시면서 혹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뺨을 때린다.”

한국에 삽니다

안드레스 솔라노 지음∙이수정 옮김

은행나무 발행∙224쪽∙1만3,000원

알면 알수록, 솔라노에게 한국인은 측은한 존재가 돼 간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학습용 개미집 앞에 선 솔라노. “개미들이 느린 속도로 힘겹게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지 않는 개미들은 경직돼 있었다. 옆에 있던 여자가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영어로 중얼거렸다. 한국 회사원들 같애.” 정규직이 된 계약직 직원이 회사 사람들에게 정성스럽게 포장한 떡을 돌리는 걸 보고 궁금해한다. “퇴직할 때도 저렇게 할까?”

북한의 극악한 무력 도발 위협에 꿈쩍하지 않는 건 외국인들이 단골로 꼽는 한국인의 미스터리다. 솔라노는 조금 더 깊이 본다. “아는 게 너무 없는”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의 아무 말 대잔치를 한심해한다. “북한 아나운서의 새로운 머리 모양이 김씨 왕조의 개방을 암시한다고 한다. 북한에 대한 모든 글은 어떤 면에서는 공상과학소설을 능가한다.” 솔라노가 발견한 한국의 이상한 점 목록엔 끝이 없다. “40대 남성의 국민 스포츠는 길바닥에 침 뱉기다, 준연예인급 학원 선생들이 있다, 맥주 두 캔을 사면 사은품으로 황사 마스크를 준다, 당구공처럼 매끈한 대머리가 없다, 명함 없는 사람이 없다, 노인들이 스트레칭을 정말 좋아한다, 펑크족∙메탈족 대신 등산객이 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솔라노는 그걸 묻고 또 묻는다. 그의 삶은 동화가 아니어서, 답은 뚝딱 구해지지 않는다. 솔라노는 말줄임표로 책을 맺는다. “……” 솔라노 부부의 여행이 계속될 거라는 뜻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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