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사설]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대법 판결, 합리적 대체복무제 서둘러야

알림

[사설]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대법 판결, 합리적 대체복무제 서둘러야

입력
2018.11.02 04:40
31면
0 0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한 군 입영 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돼 무죄라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기소된 오모씨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9대 4의 무죄 취지로 사건을 2심에 돌려보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죄라고 본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가 14년 만에 바뀐 것이다. 현재 동일한 사유로 재판을 받는 930여명의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도 줄줄이 무죄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은 6월 헌법재판소 결정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당시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조항에는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대체복무제 도입과 무관하게 병역거부 처벌 자체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양심에 반하는 국가의 작위의무 부과를 거부한 ‘소극적 양심 실현의 자유’를 처벌하는 것은 기본권의 과도한 제한이자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의 판례 변경에는 시대적 변화라는 현실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이제 국가가 관용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듯이 최근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이 급증하는 상황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터다. 국내 인권단체나 국가인권위는 물론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와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사회가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을 촉구해 온 것도 감안했을 것이다. 4명의 대법관이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규범적, 현실적 변화가 없는데도 무죄를 선고하면 혼란을 초래한다”며 반대했으나 소수의견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이제 공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대체복무제 도입이 시급해졌다. 하지만 현재 국방부가 마련 중인 대체복무제 방안은 국가인권위 권고나 국제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복무기간을 현역 육군의 2배인 36개월로 하고 복무 장소는 교정시설로 단일화하며, 심사기구는 국방부 산하에 설치하는 내용이 유력한데 또 다른 인권 침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기준인 1.5배를 훨씬 초과하는 복무기간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다시 감옥에 보내는 것과 같은 복무장소는 대체복무를 ‘징벌’적 개념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국민 공감대도 중요하지만 소수자 인권 문제를 여론에 따라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는 보다 다양하고 면밀한 의견수렴을 거쳐 합리적인 안을 내놓기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