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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는 육감적인 여성미에 반발해 탄생했다? 브랜드에 담긴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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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는 육감적인 여성미에 반발해 탄생했다? 브랜드에 담긴 철학

입력
2018.11.02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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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훈 ‘브랜드 인문학’ 

1971년 미국 시애틀에 문을 연 첫 번째 스타벅스 매장. 민음사 제공
1971년 미국 시애틀에 문을 연 첫 번째 스타벅스 매장. 민음사 제공

얼핏 봐서는 무슨 책인지 헷갈린다. 명품 브랜드를 소개하는 책인 듯싶다가, 철학 개념을 설명하는 인문 서적 같기도 하다. 미리 밝히자면 명품을 소비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나의 정체성을 찾아보자는 안내서에 가깝다. 철학을 일상에 빗대 대중과 친밀도를 높이는 인문학자 김동훈이 썼다. 선망의 대상인 명품 브랜드 탄생 스토리만으로도 흥미진진한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철학적 사유로 이어지도록 독자를 이끈다. 프라다, 루이뷔통, 버버리 등 패션에서부터 레고(장난감), 디즈니(영화), 갈리마르(출판), 알레시(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 브랜드를 다룬다.

그리스어로 표시를 의미하는 ‘스티그마(stigma)’에서 유래한 브랜드는 과거에는 몸에 새긴 표시, 즉 메시지를 의미했다. 이후 상인들이 자신들의 상품에 표시를 하면서 현대 들어 브랜드는 명품을 뜻하게 됐다. 저자는 이 브랜드에 숨겨진 욕망에 주목했다. 명품은 사치스럽다라는 비판과 부작용은 이미 많이 다뤄졌지만, 명품에 대한 욕망을 다룬 연구는 별로 없었다. 저자는 이 욕망을 살피려고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를 데려왔다. 들뢰즈는 물질을 존재의 핵심으로 긍정한 대표적인 철학자다. 들뢰즈는 우리가 브랜드에 관심을 갖고(접속), 특정 브랜드를 선택하고(배치), 이를 사용하고(영토화), 정체성을 찾고(탈주),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탈영토화)을 거친다고 분석했다. 명품에 대한 욕망을 설명하려고 들뢰즈가 사상 이론을 만든 것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저자의 설명은 꼼꼼하게 들어맞는다.

저자는 일단 브랜드의 특징을 정체성, 감각과 욕망, 주체성, 시간성, 매체성, 일상성 등 6개로 쪼갰다. 저자는 각 특징에 맞는 적합한 브랜드를 매칭하고, 영화와 시, 그리스 신화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브랜드에 담긴 긍정적 욕망을 읽어낸다. 예컨대 이탈리아 명품인 프라다는 여성의 육감적인 몸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던 기존의 유행에 반해 여성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면서 명품 반열로 올라섰다. 이 명품을 소비하는 긍정적인 욕망은 무엇일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에서 명품 소비를 경멸했던 주인공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고른 싸구려 스웨터가 사실은 브랜드에서 만들어진 색상과 디자인에 따른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들뢰즈의 표현으로 접속이며, 배치다. 이후 주인공은 명품을 사용하면서 소비 주체로 거듭난다. 이 같은 명품 소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필요한 것이 되면서 나름 건전한 소비가 된다.

또 다른 예로 한때 ‘된장녀’(과시형 소비를 일삼는 여성을 비하하여 이르는 말)의 상징이었던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를 들어보자. 상호는 미국 교과서에까지 실린 소설 ‘모비딕’에서 질주하는 선장을 막는 항해사의 이름(스타벅)에서 따왔고, 로고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세이렌이다. 스타벅스에는 세이렌의 유혹처럼 일상에서 커피 한잔은 일상의 피로와 권태를 달래주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메시지를 알고 커피를 마신다면 단순히 된장녀의 허영심이라고 보기 어렵다.


 브랜드 인문학 

 김동훈 지음 

 민음사 발행ㆍ486쪽ㆍ1만8,000원 

책은 프랑스의 고결한 철학자까지 끌어다 명품 소비를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어떤 명품에 끌리는지, 그것을 선택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명품을 걸치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가 떠오른다면 오히려 명품을 사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깨닫게 된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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