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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 구원에 대한 증언 '경애의 마음'

입력
2018.10.25 04:40
수정
2018.10.29 11:3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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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오른 소설∙소설집 10편을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두 편씩 글을 싣습니다. 본심은 11월에 열립니다.

김금희 작가. 창비 제공∙ⓒ신나라
김금희 작가. 창비 제공∙ⓒ신나라

어떤 트라우마는 인간에게 뜻밖의 성장의 화두를 던져주는 변신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어떤 트라우마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아 삶 자체를 집어삼킬 수 있다. ‘경애의 마음’은 참혹한 트라우마에 갇혀 화석처럼 굳어버린 마음을 안고 사는 주인공들을 통해 ‘인간은 과연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그리고 ‘과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가’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져주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고교 시절 불의의 화재로 소중한 친구들을 한꺼번에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온 경애. 그 화재 사건에서 단 한 명의 절친한 벗을 잃어버린 채, 그후로는 한 번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이해받거나 존중받아 본 적이 없는 쓸쓸한 삶을 살아온 상수. 둘의 이야기는 서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삶의 곳곳에서 뿌리깊은 인연의 사슬로 묶여 있는 타인과 타인이 나눌 수 있는 뜻밖의 소통, 그리고 그 소통이 빚어낸 불가해한 치유의 아름다움을 증언한다.

작품 속에서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두 사람, 경애와 상수의 공통점은 의외로 많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뼈아픈 소외감을 안고 살아왔다는 것, ‘이제 다시는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뿌리 깊은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 반도미싱이라는 같은 회사를 다니며 온갖 무시무시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 둘은 한 팀에서 일하게 되면서 진정한 소통의 기회를 여러 번 가지지만, 매번 기회를 날려버린다. 상수는 팀장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지만 사실 세상 누구와도 진정한 파트너십을 경험해본 적이 없고, 경애는 차갑고 무심해 보이는 표정 속에 무한한 공감능력과 잠재력을 애써 감춘 채 살아간다. 한주를 향한 사랑이 트라우마로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을 잠시나마 녹여줄 뻔했지만, 한주의 배신으로 인해 오히려 ‘사랑 없는 세계’보다 더욱 끔찍한 기다림과 외로움의 시간을 견뎌 온 경애.

어쩌면 경애의 희망은 경애가 가장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존재, 주변 모든 이들이 잉여 인간쯤으로 취급했던 상수의 분신, ‘언니’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상수는 낮에는 ‘무능력한 회사원’으로 핍박받지만 밤에는 온라인 세계에서 ‘언니’로 활약하며 세상 모든 실연의 아픔에 화답할 수 있는 따스하고 지혜로운 존재가 되어 경애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무한다. 경애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대낮의 상수’에게 절망한다. 하지만 독자는 ‘경애의 희망’을 판도라의 마지막 내용물이 담긴 상자를 열 듯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라본다. 현실의 팀장일 때보다도 온라인의 ‘언니’일 때, 남자일 때보다 여자일 때 더욱 진정한 자기자신으로 변신하는 상수의 해맑은 순수와 공감능력이야말로 구원의 열쇠임을 독자는 눈치챈다. 우리는 ‘경애의 마음’을 남몰래 엿보며 새삼 기쁜 마음으로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가 무심하게 스쳐 지나간 그 모든 하찮은 마주침 속에 우리의 생을 구원할 수 있는 최고의 찬란한 기회가 숨쉬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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