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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문학상 후보작] 생존 공포로 움직이는 사회 '네 이웃의 식탁'

입력
2018.10.25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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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1=""> 구병모 '네 이웃의 식탁'

 ※ 제5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에 오른 소설∙소설집 10편을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두 편씩 글을 싣습니다. 본심은 11월에 열립니다. 

구병모 작가. 민음사 제공
구병모 작가. 민음사 제공

우리는 자주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간이 몸담고 있는 사회가 각자의 삶을 지켜줄 것이라 믿지만 사실 공동체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은 하나의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냉소적인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인간이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게 된 원인으로 자연 상태의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근원적 공포에 주목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인간은 왜 무리를 지으며 살아가는가? 공동체가 ‘인간이 인간에 대해 늑대’에 가까운 존재라는 사실을 잠깐이나마 망각시켜주는 일시적인 계약의 결과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를 비틀어 말하자면, 인간이 이룩한 문명화 된 사회에는 언제나 그 희망의 계약이 깨질 수 있는 가능성이, 즉 우리의 평화로운 삶이 익숙한 주변 ‘이웃’에 의해 침범 당할 수 있는 위험성이 일상적으로 내재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친밀하고도 가까운 이웃이 어느 순간 인간의 가면을 쓴 늑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드러날 때, 우리는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가 생존 투쟁이 벌어지는 자연 상태의 전쟁터와 같다는 것을 무기력하게 자인할 수밖에 없다.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평범하면서도 섬뜩한 일상의 이면을 날카롭게 폭로하고 있는 구병모의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은 이처럼 공동체라는 이름의 허상에 가려져 있던 인간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이름도 어색하기 그지없는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은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으로 마련된 가상의 무대이며, 10년간 자녀 셋 이상을 낳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입주자를 받는 곳이다. 꿈, 미래, 실험이라는 거창한 말을 공동주택이라는 단어와 결합시킴으로써, 구병모는 현 세대 젊은이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생존에 대한 불안을 드러내고, 그들의 일상에 내재되어 있는 공포를 토대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허위와 위선을 해부한다.

소설이 비판적으로 제기하는 사회적 의제가 중요하게 부각될 수 있겠지만, 역시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돌봄 노동’, ‘공동 육아’ 등의 현실적 사안들이 소설적으로 제시되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구병모 특유의 냉정한 시선일 것이다.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일상에서 흔히 경험될 수 있는 통속적인 일들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병모는 그와 같은 통속성이야말로 모든 현대적 비극의 진정한 근원지라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은 현대적 비극의 통속적 공포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관계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 공포를 느끼는가? 공포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대상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익숙했던 대상이 그 자체로 낯설게 느껴지는 ‘익숙한 섬뜩함’ 속에서 발생한다.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구병모는 말한다. 지옥은 멀리 있지 않다. 당신이 살아가고 있는 친숙한 현실이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 그 범속하고도 통속적인 낯선 일상이 곧 지옥이다.

강동호 문학평론가∙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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