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산책하기 가장 좋은 계절인 가을이다. 공기도 좋고 온도와 햇빛도 산책하기에 이만한 때가 없다. 같이 산책을 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반려견이 미소 짓는 것 같은 느낌은 비단 필자만 가지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반려견과 하는 산책은 강아지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보호자 입장에서도 이만한 휴식시간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산책을 즐기다가도 갑자기 병원에 와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오늘은 강아지들이 산책 중에 병에 걸려 동물병원을 찾은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반려견과의 가을 산책은 즐거운 시간이다. 산책 중 새로운 친구도 만날 수 있다.
#1. 산책하다 뭘 잘못 먹었을 때

“산소호흡기! 빨리, 빨리요!” 조용하던 동물병원에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흥건하게 땀을 흘리며 약 30kg 정도 되는 골든 리트리버를 품에 안은 채 급히 병원을 찾은 것이다. 이틀 전부터 기력이 없었는데,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응급 진료를 볼 수 있는 동물병원으로 빨리 갈 것을 권했다고 한다. 리트리버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고, 잇몸도 매우 창백한 상태였다. 급하게 청진을 해보니 오른쪽 폐에서는 흉강에 물이 차 있는지 심장소리가 희미하게 들렸고, 왼쪽에서는 매우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렸다. 산소 공급을 하며 흉부 엑스레이 촬영과 몇 가지 혈액검사를 진행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오른쪽 폐에는 액체가 심하게 고인 듯 했고 빈혈도 심각했다. 혈액의 응고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검사를 해본 결과 혈액이 응고되는 시간이 ‘측정불가’로 확인됐다. ‘살리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딘가에 상처가 나서 피가 빠져나가고 있는 게 아니라 피가 잘 멎지 않아서 심각한 폐출혈이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됐다. 일단 가장 급한 과호흡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흉강에 고인 액체가 호흡을 원활하게 해주지 않는 만큼 빨리 제거했다. 초음파진단장비를 이용하여 멸균 바늘로 심장을 피해 가며 오른쪽 폐의 흉강에 차 있는 액체를 제거했다. 또한 혈압과 빈혈 치료를 위하여 즉각적인 수혈도 바로 실시했다. 응급처치를 하면서 보호자와 대화를 해보니 며칠 전 아파트 산책 중 정원에서 뭔가를 먹었던 게 의심된다고 말했다.

오른쪽 사진의 폐는 액체로 가득 차 하얗게 보인다. 치료 4일 후 폐가 많이 개선됐다.

결론은 살서제(쥐약) 중독이었다. 살서제 중독은 비타민 K1을 억제시켜 혈액의 응고인자와 칼슘의 결합을 방해하여 피가 잘 멎지 않게 된다. 살서제에 중독된 동물은 혈액응고가 되지 않아 출혈이 발생되고 구토, 과호흡, 저혈압, 쇠약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살서제 중독 증상은 섭취하자마자 나타나지 않고 며칠 후부터 서서히 보일 수도 있다. 리트리버는 비타민 K1 지혈제를 먹고 산소 공급과 수혈 등으로 며칠간 입원치료를 받고 난 뒤에 다행히도 네 발로 걸어 병원 밖을 나설 수 있었다. 산책을 다녀온 뒤 며칠이 지나 호흡이 빠르고 잇몸이 창백해 보이는 증상을 보인다면 이와 같은 살서제 중독을 의심해 봐야 한다.

#2. 산책하다 이물질이 몸에 들어갈 때

한강 둔치 산책 후에 뒷발이 부어 다리를 절고 있다는 털이 긴 요크셔테리어 한 마리가 병원을 찾았다. 뒷발 피부의 털을 잘라내 보니 피부 조직 아래쪽에 농이 차 있는 화농성 봉와직염(Cellulitis)이 확인되었다. 산책 중 발이 긁혀서 상처가 덧난 것으로 보였다. 피부에 차 있는 농을 바늘로 제거해 주고 농 일부를 채취하여 적합한 항생제를 판단할 수 있는 항생제 감수성 검사를 의뢰했다. 일반적으로 봉와직염은 농을 제거한 후 항생제와 소염제 치료를 해 1주일 가량이면 치료가 되는 편이다.

요크셔테리어는 3일 뒤 상처 부위 소독을 하기 위해 다시 병원에 내원했는데 이번에는 앞발에서도 같은 증상이 보였다. ‘면역매개성 관절염? 종양?’ 짧은 순간에 현재 증상을 설명할 수 있는 많은 질병들이 머리를 스쳤다. 일단 앞발을 앞선 치료와 비슷하게 하고 세척을 하는데 상처 부위에서 뾰족한 물질이 확인되었다. 만져보니 씨앗 같은 물체였다. 물체를 보호자에게 보여주니 집에서 공기 청정용으로 키우고 있는 식물의 씨앗처럼 보인다고 했다. 뒷발에는 치료 중 씨앗 이물이 세척돼 씻겨 나갔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발 염증의 원인이 밝혀져 치료는 잘 마무리되었다.

산책 시 발에 씨앗 이물이 박혀서 염증이 생기는 일은 가끔 있다. 씨앗 이물은 밀도가 낮아 방사선이나 초음파 검사에서도 잘 진단되지 않는 편이다. 이와 같은 사례처럼 상처를 소독할 때 발견되거나 씻겨 나오지 않으면 수술을 통해 이물을 제거해 주는 치료를 해야 한다. 또 반려견들은 산책 시 산책로 주변 수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곤 하는데, 이때 씨앗 이물이 콧구멍으로 잘못 들어가 한쪽에만 콧물이 나는 편측성 콧물이 문제가 됐던 사례도 있었다. 당시에는 마취를 통해 내시경의 일종인 비강경(Rhinoscopy) 시술을 통해 이물을 제거할 수 있었다.

한 요크셔테리어의 발가락 사이의 염증이 확인되었다. 치료 중 확인된 씨앗 이물.(오른쪽)

이외에도 먼지가 많은 날에 산책을 하고 나면 기관지염 등의 호흡기 질환이나 눈에 먼지가 끼어 접촉성 결막염이 생길 수 있으니 되도록 먼지가 많은 날은 산책을 삼가야 한다. 반려견과 산책할 수 있는 장소도 늘어나고 있고, 요즘은 지자체별로 공원에 ‘반려견 놀이터’를 많이 만들고 있다. 이렇게 많은 반려견들이 오가는 공간에서는 개 인플루엔자, 곰팡이성 피부염을 포함한 전염성 질병, 심장사상충과 진드기 감염도 가능하니 이러한 곳을 방문하기 전에는 예방접종과 구충을 진행하는 게 안전하다. 그리고 산책 이후 병원에 내원하는 경우 중 반려견들끼리 싸우다가 물려서 상처를 입고 내원하는 빈도도 높다. 산책 시 목줄을 꼭 착용하고 목줄의 길이도 잘 조절할 수 있게 보호자도 많이 연습해야 한다. 또한 배변봉투, 물, 간식 등의 반려견 산책 필수품들을 준비하고, 반려견의 산책 성향을 잘 파악하는 것도 건강하고 즐거운 산책 시간을 위해 필요하다. 더 추워지면 반려견과의 산책이 어려울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 우리 집 댕댕이들과 함께 안전하게 산책하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자.

글ㆍ사진 김태호 수의사(이리온 동물병원 청담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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