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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산업은행장의 공인의식

입력
2018.10.23 20:5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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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에게 높은 지위와 권한, 많은 보상을 부여하는 이유는 그 역할과 책임의 막중함 때문이라 하겠다. 평사원에 비해 민간기업 임원급 이상이 받는 엄청난 연봉과 대우는 짓누르는 수익 부담과, 오너의 가신(家臣)으로서 감당해야 할 ‘모욕의 대가’라는 자조도 없지 않다. 그런 부담과 ‘모욕’조차 없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최고 대우는, 맡은 업무에 관한 한, 신명을 바쳐 공익을 위한 최선을 강구해 관철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대가인 셈일 것이다.

▦ 공인으로서 신명을 바쳐 불후의 사표(師表)가 된 인물들은 우리 역사에도 별처럼 많다. 작가 김훈은 소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에서 왕과 조정의 불신과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나라와 겨레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이순신 장군과 병자호란 때의 대신 김상헌ㆍ최명길의 고독하고 장중한 행장을 그려냈다. 구한말 민영환은 대신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해 나라를 잃었다는 자책감에 자결로써 동포에 사죄했다.

▦ 어디 왕조시대의 인물뿐이랴. 과거 이승만 대통령은 측근들이 국부로 추앙하며 떠받들자 궤도를 이탈했다. 자신의 연임을 위해 무리한 ‘발췌개헌’을 감행했다. 이에 법원은 위헌판결을 내렸고, 이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자 당시 김병로 대법원장은 “판결에 이의가 있으면 절차를 밟아 상소하라”는 자리를 건 일갈로 권력에 맞서 공익을 앞세운 소신과 기개로 고위공직자의 전범이 됐다. 모르긴 몰라도 비범한 인물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름 없는 공직자들의 소신과 책임감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동력이었을 것이다.

▦ 요즘엔 선인들의 드높은 공인의식을 고스란히 바라기는 어렵게 됐다. 그럼에도 엊그제 이동걸 산업은행장의 국감 답변은 허탈하기 짝이 없다. 산은은 지난 5월 한국GM에 7억5,000만달러(약 8,400억원)를 출자하는 정상화 방안에 서둘러 합의하고 이미 3억7,500만달러를 투입했다. 하지만 한국GM이 최근 R&D법인 분리로 한국 철수 시비를 일으키자, 나머지 출자액의 투입 여부에 대해 “2차 자금 투입이 바람직하다”면서도 “국가적으로 반대하면 안 할 수도 있다”고 답한 것이다. “난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알아서 하시라”는 무책임에 다름 아니었다. 조 단위를 넘는 혈세가 이처럼 최소한의 공인의식조차 없이 뿌려진 현실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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