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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간의 복잡한 여정, 실존 인물 통해 보여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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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간의 복잡한 여정, 실존 인물 통해 보여주고 싶어”

입력
2018.10.13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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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 얼간이’로 한국에 알려진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이 신작 ‘산주’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히라니 감독은 “최근에는 인도의 한 도시를 주제로 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며 차기작 계획을 알렸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세 얼간이’로 한국에 알려진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이 신작 ‘산주’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히라니 감독은 “최근에는 인도의 한 도시를 주제로 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며 차기작 계획을 알렸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알 이즈 웰(All is Well 인도식 발음). 다 잘될 거야.” 명문대 괴짜 공학도 세 친구의 진정한 자아 찾기를 그린 인도 영화 ‘세 얼간이’(2009)가 유행시킨 명대사다. 1등 지상주의와 주입식 교육을 유쾌하게 풍자하며 자신만의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응원하는 이 영화는 한국에서 46만 관객을 동원하고 여러 번 TV에서 방영돼 사랑받았다.

‘세 얼간이’를 연출한 라지쿠마르 히라니(56) 감독은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인정받는 발리우드 대표 거장이다. 졸지에 의대생이 된 조폭의 좌충우돌을 그린 ‘문나 형님, 의대에 가다’(2003)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데뷔한 이후 새로 내놓는 작품마다 발리우드를 뒤흔들었다. ‘세 얼간이’는 인도에서만 800억원을 벌어들였고, 2015년 한국에서도 개봉한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는 1,2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며 2014년 인도 박스오피스 역대 1위를 갈아치웠다.

히라니 감독이 새 영화 ‘산주’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지난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마주한 히라니 감독은 “부산에서 만난 영화 관계자들이 ‘세 얼간이’를 많이 알고 있어서 놀랐고 반가웠다”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유명 배우 산자이 더트의 실제 삶을 다룬 ‘산주’의 한 장면.
유명 배우 산자이 더트의 실제 삶을 다룬 ‘산주’의 한 장면.

‘산주’는 발리우드 톱배우에서 테러리스트로 몰락한 산자이 더트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전기 영화다. 감독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981년 연기를 시작해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마약 중독과 여성 편력 등 논란 가득한 삶을 살았던 산자이 더트는 1993년 뭄바이 폭탄테러와 관련된 불법 무기를 소지한 혐의로 체포돼 2016년 풀려났다. 히라니 감독의 데뷔작 ‘문나 형님, 의대에 가다’ 주연배우가 바로 산자이 더트다.

히라니 감독은 “개인적인 안타까움 때문에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었다”고 했다. “산자이 더트의 삶 말고도 그와 아버지의 관계에서 흥미를 느꼈어요. 부자 사이는 단순하지 않아요. 어릴 때 아들은 아버지를 동경하지만 나이 들면서 무시하기도 하고, 더 나이가 들면 비로소 이해하고 화해하게 됩니다. 영화로 그 복잡한 여정을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실존하는 논쟁적 인물을, 더구나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의 생애를 영화화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히라니 감독은 산자이 더트에게서 25일간 그의 삶에 대해 들었다. 그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를 체포한 경찰과 그를 변론한 변호사는 물론 가족과 친구, 기자들까지 1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다. 취재에만 6개월이 걸렸다.

배우 캐스팅도 난관이었다. “유명 배우의 대역이기에 적합한 배우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여야 애로사항이 없겠다 싶어서 란비르 카푸르를 캐스팅했습니다. 산자이 더트와 외모를 닮게 만들기 위해 3개월간 살을 찌운 뒤에 최근 모습부터 역순으로 촬영했어요. 살을 빼고 한 달 뒤 중년 시절을 찍고, 다시 살을 빼서 젊은 시절을 찍는 식이었죠. 전체 촬영에 1년 걸렸어요.”

‘세 얼간이’를 보고 나면 저절로 ‘알 이즈 웰’을 흥얼거리게 된다.
‘세 얼간이’를 보고 나면 저절로 ‘알 이즈 웰’을 흥얼거리게 된다.

히라니 감독은 흥겨운 코미디로 부조리한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세 얼간이’에선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교육 시스템에 어퍼컷을 날렸고, ‘피케이’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눈을 빌려 종교와 신에 대한 맹목적 찬양을 꼬집는다. “이야기를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담길 뿐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겠다는 의도는 없어요. 다만 ‘산주’에선 한 가지 말하고 싶었어요. 바로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산자이 더트는 실제로 테러를 하려고 한 적이 없는데, 어느 기자가 한 줄짜리 기사를 내면서 세상이 그렇게 믿어 버린 겁니다. 돌이켜보면 제 영화의 소재는 거짓된 신, 거짓된 언론처럼 저를 짜증나게 하는 것들에서 얻는 것 같아요.”

발리우드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뮤지컬 장면이다. ‘산주’ 엔딩에는 실제 산자이 더트가 등장해 자작 랩을 부르며 언론을 향해 일갈하는 장면이 실렸다. 히라니 감독은 “원곡의 비방 수위는 더 높다”며 “산자이 더트가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라고 껄껄 웃었다.

상업주의가 강한 발리우드에서 히라니 감독은 상업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맞추는 몇 안 되는 창작자다. “영화를 만들 때 기준은 저 스스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객 입맛에 맞추는 순간 영화는 망가지게 됩니다. 나라마다 문화는 다르고 좋아해 주는 작품도 다릅니다. 솔직하고 담담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감독으로서 최선 아닐까요.”

부산=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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