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봉국 철원도성 남북 공동발굴 관련 학술대회
KBS드라마 '태조 왕건'에 등장했던 궁예(왼쪽). 미륵불로 자처한 그의 행동은 기행이었으나 그것이 호족 연합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는지 등을 두고선 여전히 평가가 엇갈린다.

“궁예왕은 미륵불인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미륵종’이라 부를 수 있는 종단을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비무장지대(DMZ) 안에 잠들어 있는,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도읍 철원도성 발굴을 통해 ‘미륵 도시’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 문제를 다루는 태봉학회의 학술대회 ‘남북공동의 문화유산 - DMZ 태봉 철원도성’이 12일 강원 철원군청에서 열린다. 이재 국방문화재연구원장, 조인성 경희대 사학과 교수, 하일식 사학과 연세대 교수 등이 주제발표에 나선다.

철원도성은 궁예가 마진(이후 태봉) 건국을 선언하며 905년부터 918년까지 도읍으로 삼았던 성이다. 궁예 축출 이후 버려졌고, 한국전쟁 때는 ‘철의 삼각지’ 중 하나로 격전이 치러졌다. 얄궂게도 DMZ의 딱 한가운데 놓여져 그간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철원도성에 대한 정보는 1942년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같은 일제시대 자료가 가장 최근 것이다.

군사지도상 철원도성. 군사분계선 위 아래로 북의 남방한계선, 남의 북방한계선이 있다. 네모 반듯한 철원성은 그 한 가운데 있다. 태봉학회 제공

그렇다고 철원도성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궁예가 철원도성으로 갈 때는 국력이 강성해져 후삼국 통일을 내다볼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어를 위해 험준한 산지를 끼고 짓는 다른 도성들과 달리, 철원도성은 다른 곳보다 약간 높은 평원에다 네모 반듯한 정(井)자 모양의 계획도시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선 희귀한 형태의 도성으로 대제국이었던 당나라 장안성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궁예가 ‘미륵불이 사는 제국의 수도’로 내세운 것이 철원도성이었으니 어떤 유물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실제 일제는 철원도성에서 3m가 훌쩍 넘는 석등을 찾았고, 광복 뒤 이 석등은 국보 118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금은 전쟁과 DMZ 때문에 이 석등의 존재 여부도 모른다.

일제시대 사진 중 철원의 석등. 지금은 존재 여부 조차 불분명하다. 태봉학회 제공

남북한은 지난 4월 판문점 선언,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중단됐던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사업의 재개와 함께, 철원 일대 DMZ 내 화살머리 고지에 유해발굴과 지뢰제거 등에 합의했다. 화살머리 고지라면 바로 이 철원도성 일대다. 문화재청에서 유해발굴과 함께 철원도성 공동발굴을 제안하고, 학계의 관심이 높아진 이유다. 일단 도성의 윤곽, 궁궐이나 관아와 사찰 등 주요 건물 터를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궁예 무덤에 대한 문헌기록도 있어 이 또한 확인대상으로 꼽힌다. 성사된다면 궁예가 죽은 918년 이후 1,100년만의 발굴이다.

조인성 교수는 “궁예가 죽은 뒤 철원은 계속 잊혀진 상태였기 때문에 무엇이 발굴될 지는 지금으로선 그야말로 아무도 모른다”면서 “DMZ 내 남북공동발굴조사는 상징성 또한 매우 크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기적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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