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재심서 무죄 판결 “국가의 과오 용서를”… 진실화해委 재심 권고 이후 10년 걸려

1967년 3월 22일 오후 7시, 판문점에서 귀순한 이수근씨가 헬기편으로 용산 미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자유가 그리웠소. 김일성은 오늘밤 분해서 편히 못 잘 것이오.”

북한 정권의 압제가 싫어 남한으로 탈출했지만, 결국 남한 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고 이수근(당시 44세)씨가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하며 내뱉은 말이다. 김일성 수행기자 출신 고위 언론인(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씨는 1967년 3월 22일 판문점 취재 도중 유엔군 대표였던 밴 크러프트 준장의 세단 승용차에 올라타 40여 발에 이르는 북한 경비병 총격을 뚫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씨는 남한에서 ‘귀순영웅’ 대접을 받으며 북한 실정을 알리는 강연을 다니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1969년 1월 위조여권을 이용해 홍콩으로 출국한 뒤 캄보디아로 향하다가 기내에서 중앙정보부(중정) 요원에게 체포된 이씨에게는 ‘귀순영웅’ 대신 ‘위장간첩’ 낙인이 찍혔다. 당시 검찰은 “이씨가 북한 지령을 받고 귀순한 위장간첩”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혐의를 적용했다. 같은 해 5월 1심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고, 판결 두 달 만에 형이 집행됐다. 이씨는 항소를 하지 않았다.

38년이 지난 2007년 1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를 통해 이수근 위장간첩 사건이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 중정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 가족에 대한 염려 등으로 중립국으로 망명하려던 이씨에게 중정이 위장간첩 누명을 씌웠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이씨 자백에 의존한 이 사건은 사실 확인도 없이 졸속으로 재판이 종결됐고, 위장귀순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며 유족에 대한 사과와 재심 조치를 취하라고 국가에 권고했다. 이듬해 법원도 이씨 공범으로 21년간 수감됐던 이씨 처조카 배경옥(80)씨 재심에서 “이씨가 위장간첩이라는 점과 배씨가 간첩행위를 도왔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김경진 기자

정작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이씨의 명예회복에는 10년 세월이 더 필요했다. 배씨가 이모부인 이씨의 재심을 청구하며 적극 나섰지만, 재심청구권이 없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기각됐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상 사망한 자의 재심은 검사나 법정대리인,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만이 청구할 수 있는다. 혈혈단신으로 귀순한 이씨를 위해 재심을 청구해 줄 사람이 없었다.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해달라는 배씨 요청을 줄곧 외면하던 검찰은, 지난해 문무일 검찰총장의 과거사 사죄가 나오고 나서야 이씨 재심 청구에 나섰다.

법원은 11일 이씨에 대한 재심 선고에서 “권위주의 시대의 과오에 대해 피고인과 유가족에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때”라고 사죄했다. 이씨가 누명을 쓰고 세상을 뜬 지 반세기만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국가에 의해 위장간첩으로 낙인 찍혀 생명권을 박탈당했다”며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등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그가 남한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공문서 위조 및 행사,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 일부 혐의만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처조카 배씨는 이날 선고 직후 “이제라도 명예회복을 해드려 다행이지만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털어 놓았다. 배씨는 “판결이 확정되는 대로 형사보상금 및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낼 계획”이라면서 “배상금 전액으로 이모부 이름의 장학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배씨는 상속권자에 해당하지 않아 배상 청구가 불가능하나, 이씨와 혈족 관계에 있는 북한 주민도 원칙적으로 상속권이 인정된다는 게 대법원 견해라 희박하지만 대리 소송 가능성이 남아 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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