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김정선 '숨바꼭질'

사계절출판사 제공

전쟁은 나쁘다. 사람을 죽이고, 집을 부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만든다. 어떤 전쟁은 괜찮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리 그럴싸해도, 전쟁을 한들 죽거나 부서지거나 헤어질 일이 없는 자들의 논리다. 이 그림책은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이야기다. 죽고 부서지고 헤어진 이야기.

순득이와 순득이, 양조장집 박순득과 자전거포 이순득은 늘 붙어 다닌다. 해가 나고 달이 날 때까지 온종일 내내. 그러나 전쟁 전까지만. 손잡고 뛰놀던 길에 피란 행렬이 이어지던 날, 둘은 헤어진다. 박순득은 남고 이순득은 떠나고. 곧 다시 볼 줄 알았으리라, 숨바꼭질할 때처럼. 그 바람으로 둘은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남은 순득이가 먼저 술래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떠난 순득이는 산길을 넘고, “꼭꼭 숨어라, 달님이 찾을라.” 콩밭 고랑에 누워 자고, “꼭꼭 숨어라 해님이 찾을라.” 강을 건너고.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남은 순득이가 숨바꼭질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부를 때, 떠난 순득이는 지나온 강 건너, 산 너머로 향해 가는 폭격을 본다.

사계절출판사 제공

그리고 이어지는 술래의 물음, “숨었니?” “숨었다!” 피란촌에 머물게 된 순득이는 마을에 남은 순득이의 상기된 목소리를 듣고 싶었으리라. “어디 어디 숨었니? 남색 치마 보인다. 하얀 얼굴 보인다.” 고달픈 피란처에서도 책을 펴든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찾았다, 순득이!” 술래가 그렇게 외칠 수 있도록.

폭격이 전황을 바꾼 것일까, 이제 술래가 바뀌었다. 떠난 순득이가 남은 순득이를 찾을 차례. 다시 강을 건너며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들을 지나며 “꼭꼭 숨어라, 달님 아래 지난다.” 산을 넘으며 “꼭꼭 숨어라, 해님 아래 지난다. 동구 밖에 다 왔다.” “찾았다, 우리 집!” 순득이는 부서진 집을 찾고, “찾았다, 점박이!” 탄피 널린 폐허 속에서 양조장집 강아지 점박이를 찾았다. “찾는다, 박순득!” 이제 순득이만 찾으면 되는데, 폭격 맞은 ‘순득이네 양조장’에 순득이는 보이지 않는다. “어디 어디 숨었니?” 온 마을을 뒤져 봐도...

숨바꼭질
김정선 지음
사계절출판사 발행∙52쪽∙1만3,000원

술래는 풀이 죽었다. “못 찾 겠 다. 꾀 꼬 리.” 다시 술래가 되어도 좋으니 이제 그만 나와 달라는 순득이 앞에 점박이가 물어다 준 것은 친구의 신발 한 짝. 순득이는 영원한 술래가 되고 만 것인가.

눈 쌓이듯 시간이 흐르고, 복구된 ‘순득이네 자전거포’는 ‘이가네 자전거포’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순득이네 양조장’이 사라졌으니 ‘순득이네 자전거포’도 의미를 잃었나 보다. 버겁게나마 커다란 짐자전거를 탈 수 있을 만큼 자란 순득이가, 짐칸에 친구의 신발 한 짝을 실은 채 천막 학교 앞에 멈춰선 장면으로 그림책은 이야기를 닫는다. 부서진 학교는 그렇게라도 다시 세울 수 있으나, 잃어버린 친구는 어찌할 것인가.

그 시절의 순득이들이 잃어버린 사람이 친구뿐이랴. 부모와 형제, 피붙이들과, 못잖게 소중한 많은 관계들... 숱한 순득이들이 신발 한 짝씩 가슴에 품고 짐자전거처럼 버거운 삶을 끌고 왔으리라.

그 전쟁을 ‘멈춘’ 지 65년, 이제 끝내자는 열망이 가득한데 복잡한 셈속으로 까탈을 부리는 자들이 있다. 전쟁이 나도 죽거나 부서지거나 헤어질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누가 시작했든 누가 멈췄든, 전쟁으로 죽고 부서지고 헤어지게 되는 쪽은 언제나 우리다. '종전'은 더 이상 그런 일이 없게 하는 일이다. 우리, 순득이들의 종전을 훼방 놓지 말라. 끝내지 않아도 괜찮은 전쟁은 없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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