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개신교계 조직적 항의에 무릎

한 정신장애인 복지시설에 있는 교회에 헌금봉투가 놓여 있다. 이곳 거주인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 대상인 극빈층이지만 반강제로 예배에 나가야 하고 헌금도 낸다. 장애인단체 활동가 A씨 제공

신체ㆍ정신 장애인이나 극빈층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수용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에서 거주인과 직원들에게 예배와 헌금 등 종교활동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일부 종교계의 집요한 반대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철회됐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8월 6일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1인이 공동 발의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단 한번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지난 5일 정식 철회됐다. 발의한 11명 중 최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취임한 유은혜 의원과 권미혁 원내부대표를 제외한 9명(김상희, 백혜련, 서삼석, 소병훈, 이규희, 정춘숙, 조정식, 진선미, 최인호)이 철회를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 발의한 의원상당수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관련 입법 활동에 열의를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본인의 의사였다기보다 지역구 교회와 교인 등까지 동원된 조직적 항의에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 한국일보] 철회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 주요내용 - 송정근기자

전국 장애인 단체 등 시민단체와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등에 따르면 현재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다수의 복지시설에서 거주자에게 아침예배나 삼천배 등 종교행위를 사실상 강요하고, 직원들에게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을 내도록 종용하고 있다는 증언이 다수 나오고 있다(본보 10월 4일자 1면 보도). 이에 따라 복지시설에서 종교 강요 행위를 금지하고 어길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어렵게 발의됐지만, 보수 개신교 측은 “기독교 탄압”이라며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법안을 발의했다 철회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구 교회 측의 전화와 문자 폭탄 등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지난 1일 학교에서 인권교육을 하도록 지원하는 내용의 인권교육지원법안이 ‘인권 교육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내세운 개신교 단체들의 항의를 받아 철회된 데 이어, 거주인과 직원에게 헌법적 권리인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상식적인 내용의 법안마저 비슷한 집단 항의에 무릎 꿇은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근거와 논리에 의한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막무가내 식 항의 때문에 철회하는 사례가 연달아 발생함에 따라 앞으로도 비슷한 식의 ‘떼쓰기’가 반복될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졌기 때문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두 법안의 철회는 말도 안 되는 항의라도 일단 항의만 하면 철회될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아주 나쁜 선례가 됐다”고 지적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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