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비건 라이프 실천하는 업계 종사자들

“색조화장품 식물성 성분 대체, 색감 뛰어나”
“개성 있는 디자인 내세워 소비자 사로잡아”

일상에서도 폭력적인 ‘동물 축제’는 빈번하게 벌어진다. 동물의 생명을 앗아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생활이라는 이름의 축제를 즐길 수 있음에도 의식주 전 분야에서 행해진다. 이에 반한 전 지구적인 움직임, 불필요하게 동물의 희생을 부르는 각종 행위를 거부하는 이른바 ‘베가니즘(Veganism)’ 열풍이 국내에도 불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각종 대체재 생산이 가능해져 굳이 동물성에 의존한 생활용품을 만들고 이를 소비할 필요가 없어진 세상. 이를 따름에 있어 극단적인 생태주의자, 동물권익 운동가일 이유도 없다.

“생명에 대한 관대함이자 지구를 위한 멋진 생활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의생활 분야에서 동물성을 배제하고 있는 패션브랜드 운영자 양윤아씨가 말하는 베가니즘에 대한 정의다. 양씨는 국내 최대 베가니즘 축제인 ‘비건 페스티벌’ 기획자로 채식뿐 아니라 입고 소비하는 모든 생활로 채식주의를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최대 비건 축제인 ‘비건 페스티벌’은 채식부터 입고 쓰는 생활용품까지 범주를 넓히고 있다. 비건페스티벌 제공

양씨가 이끄는 비건 페스티벌은 애초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행사였지만 이후 의식주 전반의 ‘베가니즘’으로 성격이 변모하고 있다. 지난 7월 개최된 다섯번째 페스티벌 현장에 차려진 부스 80개 가운데 먹거리 관련은 40개였고 나머지는 신발, 가방 등 각종 생활용품으로 채워졌다. 그들 가운데 하나는 양씨가 운영하는 패션브랜드 ‘비건타이거’다.

◇울, 실크, 뿔단추도 배제한 패션

패션업계와 동물보호단체에서 몸담았던 양씨는 3년 전 두 가지 경험을 모두 살려 국내 최초의 비건 패션 브랜드를 시작했다. 비건 패션은 모피, 가죽, 뼈단추 등 동물을 착취해서 얻어낸 원부자재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만든 제품을 일컫는다. 비건타이거는 익히 잘 알려진 모피나 가죽뿐 아니라 울이나 실크까지 완전히 배제한다. 대량생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동물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라는 게 양씨의 설명이다.

패션브랜드 '비건타이거' 양윤아 대표. 모피, 가죽뿐 아니라 울, 실크도 전혀 사용하지 않지만 개성있는 디자인으로 일반소비자까지 공략하고 있다. 박고은PD

“대부분 울 제품은 양모를 깎아 사용하니 문제없다고 생각하지만 털을 빠르게 깎는 과정에서 양이 쉽게 다치고 엉덩이 쪽은 아예 쭈글쭈글한 피부를 들어내기도 해요. 실크는 예전엔 누에가 탈피한 걸 채취했지만, 요즘은 살아있는 누에를 그대로 삶아내 만들어요.”

동물 부산물을 전혀 쓰지 않으면서 보온성을 비슷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최근 생산되는 인조품은 동물성 제품과 섞어놓으면 전문가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예요. 실크사, 뿔단추 대신 코아사나너트ㆍ플라스틱 단추도 기존 제품에 견주어 손색이 없어요.” 양씨는 최근 오리털, 거위털과 버금가는 방한력을 지닌 대체소재가 개발됨에 따라 이를 이용한 패딩제품도 만들 계획이다. 다만 울 대체재는 질감이 울보다 떨어져 고급 TR소재(폴리에스테르에서 추출)나 고밀도 코듀로이를 골라 쓴다.

비건타이거는 개성 있는 디자인을 앞세워 일반 소비자도 사로잡고 있다. 덕분에 윤리적 소비영역이 아닌 일반 쇼핑몰에도 입점했고 백화점 팝업매장도 열었다. 봄여름 시즌에 다양한 프린트가 나오는 ‘실크 느낌의 실크 없는’ 로브(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 카디건)는 남녀 불문 인기다. “동물 부산물을 제외한 제품인지 모르고 구입하는 분이 90%에요. 나중에 브랜드의 정체성을 알고 나면 더 좋아해요.”

◇색조 화장품, 타투 안료까지 ‘비동물성’

17년차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솔지씨는 7년 전 비건 메이크업 전문이 됐다. 비건 메이크업은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거나 동물실험이 이뤄지는 화장품을 배제한다. 20대 후반 호주에 살면서 베가니즘에 빠져든 박씨는 이후 자연스레 직업에도 변화를 꾀했다.

메이크업아티스트 박솔지씨. 식물성 색조화장품, 인조모 메이크업브러시도 기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설이PD

색조화장품은 베가니즘 세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왔다. 기초화장품은 쉽게 비동물성 제품으로 만들어지지만 색조화장품의 경우 대체제를 찾기 힘들어서다. 하지만 이런 기조는 달라졌다고 한다. 박씨는 “색조화장품에 쓰이는 식물성 대체재의 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져 오히려 명품보다 더 색감이 좋다”고 단언했다. 립스틱, 아이섀도 등의 붉은 색은 연지벌레에서 추출한 성분을 사용했지만 이제 꽃잎 추출물로 대체할 수 있다. 촉촉함을 주는 콜라겐이나 글리세린은 돼지 연골이나 지방에서 뽑아썼지만 아보카도 오일의 기능도 뛰어나다. 화장품을 얼굴에 펴 바를 때 쓰는 브러시도 선택지가 넓어졌다. “브러시털은 청설모 털을 보통 써왔지만 요즘엔 인조모로 만든 제품이 다양하게 나오고 품질도 차이가 없어요. 동물제품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어 이런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9년차 타투이스트(문신사) 윤지현씨 역시 비건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이후 자연스럽게 비건 타투이스트가 됐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입고 쓰는 방식에 변화를 주면서 직업에 사용하는 재료도 바뀌었다.

비건타투이스트 윤지현씨는 “과거에는 생생한 색감을 내기 위해 타투 안료에 동물의 뼛가루가 많이 쓰였지만 이제는 동일한 기능의 식물성 대체품이 많아졌다”며 “그런데도 굳이 동물성 제품을 사용할 이유가 있냐”고 반문했다. 한설이PD

윤씨는 타투에 쓰이는 제품을 고를 때 동물성분이 들어가지 않는 것만 고집한다. 타투 안료 가운데 화사한 칼라를 내기 위해 뼛가루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사후관리 제품에 함유된 라놀린은 양에서 추출한 피지로 이뤄져 있다. “동물성 원료를 회피하는 건 상식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일한 기능의 식물성 대체품이 많아졌다면 굳이 동물의 노동력이나 생명을 빼앗는 방식을 택할 필요가 없죠. 생명체의 고통에 공감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림 2[저작권 한국일보] 비건 유형 및 베가니즘(동물실험과 동물성원료를 배제한 제품이나 서비스) 제품들=그래픽 강준구 기자

◇비동물성 제품인데 동물실험이 필요?

섹슈얼 헬스케어 제조회사 ‘이브(EVE)’는 지난 7월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생리컵을 국내 최초로 출시하며 1억원 펀딩에 성공해 화제가 됐다. ‘생식기에 닿는 모든 것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모토 아래 국내 첫 비동물성 콘돔과 생리컵 등을 내놨다.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에서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고 동물성 원료를 쓰지 않았다는 크루얼티프리앤비건(Cruelty free&Vegan) 인증도 받았다. 박진아 대표는 “생각보다 큰 규모로 동물이 희생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동물성 원료를 쓰지않는 것을 주요한 가치로 앞세우게 됐다”고 했다.

성인헬스케어용품 '이브'의 박진아 대표는 대체실험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 동물성실험을 대신할 다양한 안전성 검사법이 상용화되길 희망했다. 박고은PD

국내에서 콘돔(의료기기)과 생리컵(의약외품)을 출시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동물실험결과를 제출하고 허가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콘돔은 조각을 잘라 암컷 토끼의 질에 넣어 꿰맨 뒤 반응을 살피는 실험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동물성 재료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이뤄져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박 대표는 비동물성 콘돔과 생리컵 등을 개발해 출시하면서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합법적으로 피하기 위해 기존에 안정성이 검증된 재료만을 이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박씨는 “인공피부에 대한 실험 등 각종 대체실험이 상용화돼 안정적인 인증방법이 다양해지면 좋겠다”라며 “동물 희생을 줄여나갈 선순환에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게 정말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 “베가니즘을 한다고 너무 빡빡한 기준을 부여하면 쉽게 피로감을 느껴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가치있다고 했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제품을 고를 때 기왕이면 동물실험을 안 했다는 인증이 박힌 제품을 고르는 등의 사소한 노력도 충분히 의미가 있어요.”

◇비동물성 제품과 천연 제품은 달라요

브랜드컨설팅회사를 운영하던 이지윤씨는 피부 때문에 비동물성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피부병인 한포진을 겪으며 5년 넘게 병원 치레를 하던 어느 날 늘 쓰는 세정제와 치약 성분을 자세히 살펴본 뒤다. “피하고 싶은 성분들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어요. 강아지를 키우면서 동물복지에 눈 뜨기 시작한 무렵이기도 했고요.”

주방세제, 핸드워시 등을 제조하는 분코 이지윤 대표는 “100% 천연제품과 혼동하는 분들이 있는데 식물성화학성분을 이용, 일반제품처럼 거품도 잘 나고 세정력도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한설이PD

이씨는 홈케어 제품회사 분코(Boon Companion)을 설립해 핸드워시, 주방세제, 치약 등을 100% 비동물성으로 만들고 있다. 영국 ‘비건소사이어티(The Vegan Society)’로부터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지 않으며, 유전자조작식품(GMO) 원료를 배제했다는 인증도 받았다.

보통 피부에 닿는 세정제에는 보습 작용을 위해 오일이 들어간다. 동물성 오일이 일반적이지만 분코는 레몬 등에서 추출한 식물성 오일만 사용한다. “이것도 등급이 다양한데 인공향이나 색소가 빠진 고급 원료만 씁니다.” 향수에 들어가는 천연에센스 오일로 향 때문에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있을 정도가 됐다.

“간혹 ‘비동물성 제품은 거품이 안 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화학성분이 완전히 빠진 천연제품과 헷갈려 그래요. 비동물성이 100% 천연은 아닙니다.” 대신 식물에서 추출한 화학성분을 쓰기 때문에 일반제품처럼 거품도 잘 나고 세정력도 우수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원료를 소량씩 수입하다 보니 비싸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용량 묶음제품 판매가 인기다. 아이를 키우는 30, 40대 주부가 가장 많지만, 살림하는 젊은 남성 소비자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씨는 자동차를 닦거나 곰팡이를 지울 때 쓰는 다목적 세정제처럼 생활용 화학제품에도 관심이 많다. “주요 성분만 훑어도 안 좋은 성분이 많아요. 흔히 수입품은 나을 거라 생각하지만 확인해보면 이런 생각이 깨질 겁니다.”

송은미기자 mysong@hankookilbo.com

박수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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