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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마리 스톱스(10.2)

입력
2018.10.0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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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권에서 더 나아가 우생의 전망 위에서 피임과 산아 제한을 옹호했던 마리 스톱스가 1958년 오늘 사망했다.
여성 인권에서 더 나아가 우생의 전망 위에서 피임과 산아 제한을 옹호했던 마리 스톱스가 1958년 오늘 사망했다.

이성과 과학으로 인류 미래를 낙관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 지식인들에게 우생학은 매혹적인 돌파구였다. 아름다운 업적으로 추앙 받는 과학자와 철학자, 정치인들 가운데 그 허방에 빠져 오점을 남긴 이들이 허다하다. 윈스턴 처칠과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비롯, 버틀란트 러셀과 헬렌 켈러, 조지 버나드 쇼 등이 한때지만 우생학의 멋진 미래를 찬양했다.

미국의 여성운동가 마거릿 생어(1879~1966)와 더불어 피임과 산아 제한의 선구자로 추앙 받는 영국의 고식물학자 겸 여성운동가 마리 스톱스(Marie Stopes, 1880.10.15~1958.10.2)도 그 중 한 명이다. 그에게 산아 제한과 피임은 ‘멜서스의 저주’를 극복하고 결혼과 성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이자, 공동체 안에서 경제적ㆍ문화적ㆍ인종적 열등자들의 비율을 줄여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명쾌한 길이었다. 당연히 그는 영국 우생학회 회원(1921년 가입)이었다.

그는 1920년 ‘건설적 산아 제한과 인종적 진보를 위한 협회(Society for Constructive Birth Control and Racial Progress)’를 설립하고, 이듬해 3월 영국 최초 산아 제한ㆍ피임 클리닉인 ‘산모 클리닉’을 개설했다. 방문 의사와 산파 등과 함께 클리닉을 운영하며 올리브오일을 적신 스폰지를 질에 삽입하는 방법 등 여러 피임법을 고안ㆍ보급했다. 다만 그는 낙태를 범죄로 여겨 맹렬히 반대했고, 직원들에게 어떠한 낙태 관련 정보나 도움도 산모에게 제공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하게 했다. 그의 클리닉은 40년대 중반까지 여러 도시로 확산됐다.

과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스톱스는 1902년 런던대에서 고식물학으로 최연소(22세) 박사학위를 받아 1904년 여성 최초 런던린네학회 회원이 됐고, 여성 최초 맨체스터대 교수(1904~10)를 지냈다. 여성의 결혼과 성생활에 대한 파격적인 저서 ‘Married Love(1918)’는 출간 첫해 5쇄를 찍을 만큼 큰 인기를 끌었고, 피임법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Wise Parenthood’를 잇달아 출간했다.

그는 낙태 반대론자였지만 그의 이름을 딴 ‘마리 스톱스 인터내셔널’은 세계 37개국 저소득 여성들의 피임과 낙태를 지원하는 세계 최대 산모 보건 비정부기구다. 1975년 도산한 마리 스톱스 재단과 클리닉을 티머시 블랙이란 이가 인수해 76년 새로 문을 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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