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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노인들 “즉석밥은 그림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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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노인들 “즉석밥은 그림의 밥”

입력
2018.09.22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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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사는 김모씨가 최근 복지재단에서 받은 즉석밥과 레토르트 식품. 오세훈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사는 김모씨가 최근 복지재단에서 받은 즉석밥과 레토르트 식품. 오세훈 기자

“도와주는 건 고마운데 정작 즉석밥을 데워 먹을 전자레인지가 없네요.”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A(79)씨는 올해도 추석 연휴 기간 끼니를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이다. 평소 도시락 배달을 하는 구청이 연휴에는 쉬는 탓에 닷새치 음식을 미리 제공했지만 즉석밥과 레토르트(가공 조리해 주머니 등 용기에 넣은 저장식품)처럼 노인 입장에서 조리가 어려운 식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A씨는 “지난해 추석에도 즉석밥을 받았는데 데울 수가 없어 그냥 찬물에 말아 먹었다”며 “하루 이틀도 아니고 5일이나 그렇게 밥을 먹으려니 나중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더라”고 푸념했다.

무료급식소ㆍ노인복지관 등이 대부분 문을 닫는 추석 연휴, 도시락 대신 즉석밥을 받아 든 저소득층 노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시가 시행하는 어르신 무료급식사업 일환으로 각 자치구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노인 중 거동이 불편해 복지관으로 찾아올 수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도시락 배달사업을 운영 중이다. 평상시엔 당일 오전 조리한 밥과 반찬을 제공하지만, 추석 연휴엔 복지관이 휴관해 즉석가공식품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 이에 각 지자체는 21일까지 추석 연휴 5일치 즉석밥과 레토르트 식품을 미리 배달했다. 문제는 젊은이에게는 조리가 쉽고 간단한 식품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겐 낯설고 어렵다는 점이다.

즉석밥과 레토르트 식품을 받아 든 노인들이 당황하는 이유는 조리 여건과 편치 못한 몸이다. 종로구 거주 노인을 상대로 도시락 배달을 하는 김모(80)씨는 “1평 남짓 쪽방에 전자레인지를 들여놓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쪽방촌엔 끓는 물로 즉석밥을 데워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성치 않은 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씨가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노인 3명 가운데 2명은 도우미 없이 스스로 몸을 일으키기도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복지 도우미마저 출근하지 않는 추석 연휴, 이들의 선택지는 즉석밥을 찬물에 말아먹거나 아예 굶는 것뿐이다.

즉석 식품 자체가 낯선 노인들도 있다. 김모(89)씨는 며칠 전 구세군 등의 지원을 받는 돈의동 사랑의쉼터에서 즉석밥과 라면, 레토르트 식품이 잔뜩 든 상자를 받았지만 열어보지도 않았다. 김씨는 21일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처음 보는 것들이라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어르신 무료급식사업을 운영하는 서울시 관계자는 “자치구와 복지관 측에서 대상자 특색에 따라 대처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주지시키겠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21일 종로구 돈의동 한 노인 집에 배달된 음식. 이날 조리된 쌀밥과 반찬(오른쪽)과 함께 추석 연휴 동안 먹을 즉석밥과 레토르트 식품이 함께 배달됐다. 손영하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21일 종로구 돈의동 한 노인 집에 배달된 음식. 이날 조리된 쌀밥과 반찬(오른쪽)과 함께 추석 연휴 동안 먹을 즉석밥과 레토르트 식품이 함께 배달됐다. 손영하 기자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오세훈 기자 comingh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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