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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진전이 ‘핵 돈줄’ 오명 북한 미술도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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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진전이 ‘핵 돈줄’ 오명 북한 미술도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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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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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 ‘대고려전’에 北 문화재 초대… 미술계, 교류 물꼬 기대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북한의 대표적 미술품 창작기관인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해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북한의 대표적 미술품 창작기관인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해 관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일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올해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이 되는 해인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12월 개최되는 ‘대고려전’에 북측 문화재를 함께 전시하자고 제의했다”.

20일 2박 3일 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프레스센터를 찾은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대국민보고’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합의서에 담지 못했으나 구두로 합의된 것도 있다”면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협력하겠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문화재 교류가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 미술계에서는 문 대통령 방북을 계기로 시대와 장르를 총망라하는 남북 미술 교류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평양 방문 둘째 날인 19일 문 대통령이 평양 만수대창작사를 찾아 방명록에 남긴 ‘예술이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를’이라는 덕담도 향후 남북 미술 교류가 활발해질 거라는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분단 이후 각기 다른 미술사를 써온 남북이지만, 교류는 꾸준히 추진돼 왔다. 특히 북한 미술 향유를 금지하던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발표된 순수 예술 작품에 한해’라는 단서를 달아 1988년 월북 작가 작품 공개 금지 조치를 푼 뒤에는 북한 미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 고조에 힘입어 전시회도 늘었다.

해금(解禁) 이후 처음으로 1990년 정부가 북한 작가 유화 40여점을 대중에 공개했고, 이듬해에는 국제고려학회 초청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남북코리아서화전’이 열렸다. 단발성이기는 했지만 남북 작가들이 한반도 밖에서 만나 세미나 등에 공동 참가하며 상대방의 미술 동향을 살필 수 있었다. 1992년에는 분단 이후 최초로 국가 기관(당시 통일원)의 공식 허가 아래 북한 현대 미술이 대중에 공개됐다.

지난해 말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낸 보고서 ‘북한미술 복원ㆍ복제와 유통’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 들어 미술 종사자ㆍ애호가들이 북한 미술품을 국내에 반입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1998년 북한 미술품을 ‘남북교류 대상 물품’으로 지정해 공식 반입을 허용하면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북한 미술품을 접할 기회는 이따금 무역상사가 여는 홍보ㆍ판매 목적의 북한 미술 전시회 정도에 불과했다. 새천년 직전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남북 미술 교류의 토대를 닦은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평양 만수대창작사를 찾아 방명록에 '예술이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를!'이라고 남겼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평양 만수대창작사를 찾아 방명록에 '예술이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를!'이라고 남겼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부터는 북한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회 수도 크게 증가했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북한 미술이 주제인 특별전이 마련됐고, 2006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북한 문화유산 90점을 선보였다. 11월 11일까지 열리는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도 북한 작가 작품 22점을 볼 수 있다.

다른 체제와 이념을 지향하는 북한 미술을 날 것 그대로 향유하기엔 제한이 있는 게 사실이다. 여전히 북한 미술품을 국내로 반입하기 위해서는 통일부 등 관계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념색 짙은 작품의 경우 수입 불허 조치가 내려지는 경우도 많았다. 주로 실향민의 향수를 달래는 북한 풍경이나 생활상을 담은 작품과 해외에서도 유명한 화가의 작품 정도가 주로 남측 관객과 만났다. 이는 자기들의 미술이 남측은 물론 해외 곳곳에서 인기를 누렸으면 하는 북한 당국의 바람과는 어긋나는 현실이다.

장애 요인은 그뿐 아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핵 개발 돈줄이 될 수 있다며 2016년 11월 북한 최대 규모의 미술품 제작소인 만수대창작사의 해외 동상 및 조형물 수출을 금지시킨 데 이어, 지난해 만수대창작사의 해외사업을 맡고 있는 만수대해외개발회사그룹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실제 미술품은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다. 한미 정부도 2016년 12월 만수대창작사를 대북 독자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그래서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이번 방북 때 만수대창작사를 찾은 문 대통령 부부 및 수행원들은 작품을 단 한 점도 구매하지 못했다.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노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특별수행단이 따로 만수대창작사를 찾아 즉석에서 도자기와 그림 등 작품 25점을 샀었다. 평양 회담의 핵심 의제는 비핵화 실천 방안이었다. 어쩌면 핵 굴레로부터 해방될 날을 북한 미술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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