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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북한 퍼주기 논쟁을 극복하려면

입력
2018.09.18 18: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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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판문점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 예산에 4,712억원이 반영되었다고 하자 야당이 북한 퍼주기라고 비판했다. 도로ㆍ철도 연결을 위한 설계비처럼 초기 비용이라 소규모로 보이지만, 공사 단계에 들어가면 향후 수십조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퍼주기론은 2000년 9월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60만달러 규모 식량 차관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편법투성이 식량 퍼주기’라고 비판하면서 본격 등장했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은 “우리도 사정이 어려운데 달러를 주고 외국산 쌀을 사서 줄 수는 없다”며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퍼주기론은 이후 줄곧 보수진영의 공격무기였고, 노무현 정부 들어 대북 송금 특검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DJ 정부와 참여 정부는 대북 지원이 한반도 긴장 완화를 가져왔고, 쌀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이라고 주장했다. 10년간 지원 규모가 3조5,000억원, 연간으로는 3500억원이니 우리나라 국민총소득(GNI) 대비 0.01%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퍼주기론이 동력을 유지한 것은 북한이 최악의 경제상황이라면서 핵개발을 지속했고, 완성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햇볕론자들로서는 아픈 대목이다.

앞으로 대북지원은 북한의 핵 폐기를 전제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차별화된다. 한반도 비핵화의 최대 수혜국이 평화유지를 위해 부담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염원하는 경제개발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자 자신들보다 50배 이상 큰 대한민국의 도움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같은 민족이라는 점에서 이해타산을 초월한 통 큰 선심을 요구하고 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북한이 가진 양질의 노동력이나 지하자원도 우리 경제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므로 선점 차원의 투자도 외면하기 어렵다.

문제는 우리 형편도 넉넉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저출산, 고령화의 그늘 속에서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고 일자리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사회안전망이 턱없이 부족하다. 북한에 대한 지원이 합리성을 갖추지 못하면 퍼주기론은 언제라도 탄력을 받을 것이다. 우리 경제의 수용 능력 범위 내에서 효과적으로 돕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국민적 컨센서스를 얻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공하는 식량ㆍ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과 인프라 건설과 같은 경제개발을 위한 사업은 공적개발원조(ODA)의 틀 속에서 추진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ODA는 국력 신장과 ODA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확장 추세다. ODA는 지난해 GNI의 0.14%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5위로 올라섰고, 2015년 박근혜 정부는 2030년까지 OECD DAC(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평균인 GNI의 0.3%까지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이 목표의 3분의 1 정도를 대북지원 용도로 사용하면 2030년까지 10년간 북한에 180억달러 이상 지원할 수 있다. 우리의 경제력으로 감내할 만한 수준이므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또, 연평균 18억달러면 북한의 2017년 수출액 18억달러와 맞먹는 규모이므로 IBRD 등 국제기구와 미국ㆍ중국ㆍ일본 등이 제공하는 유ㆍ무상 원조와 어우러진다면 충분히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헌법상 북한은 독립된 국가가 아니라서 북한에 주는 원조는 지금까지 ODA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북한은 1인당 소득 1000달러 이하의 저소득 국가로서 대부분의 국제기구가 원조대상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만큼 ODA의 틀 속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글로벌 규범과 관행에 합치된다.

퍼주기론은 국민 정서의 말초적 부분을 자극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우리의 국가 위상이나 통일을 지향하는 비전과는 격이 맞지 않은 레토릭이다. 우리의 국력에 걸맞은 대북지원 방식을 정립해서 국민적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를 바란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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