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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경복궁의 ‘퓨전 한복’

입력
2018.09.14 22:3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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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을 비롯한 서울의 고궁에 한복 차림 관람객의 모습이 부쩍 늘었다. 광화문 근처를 지나노라면 투명한 가을 햇살 아래 분홍 노랑의 화사한 치마저고리 차려입고 재잘거리며 거니는 소녀들의 모습이 달맞이꽃처럼 어여쁘다. 한복 차림이 우연히 늘어난 게 아니다. 2015년만 해도 한복 차림 고궁 관람객은 연간 1만3,000여명에 불과했다. 그게 종로구가 2013년부터 한복 입기 운동을 벌이고, 문화재청이 한복 착용자들에게 고궁 무료 입장을 시키면서 지난해엔 한복 관람객이 63만명까지 급증했다고 한다.

▦ 그런데 뜻하지 않은 걱정이 생겼다. 고궁을 찾는 관람객들은 대개 주변 대여점에서 한복을 빌려 입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장이 커지다 보니 여기저기 생겨난 대여점에는 값싸고, 관리하기 쉬우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화려한 디자인의 ‘퓨전 한복’들이 어느새 주종을 차지하게 됐다. 말이 퓨전이지, 사실은 고유 한복과는 전혀 다른 저질 옷감을 쓴 중국제도 많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전통 디자인의 심각한 훼손이다.

▦ 한복의 가장 큰 특징은 평면재단이다. 평면재단은 신체 치수에 맞춰 옷의 각 구성부위 본을 뜬 다음, 그에 맞춰 옷감을 자른 뒤 그 평평한 조각을 짜 맞춰 옷을 만드는 방식이다. 완성된 옷 역시 평면이다. 입체재단 되는 양복에 비해 넉넉하게 마름하기 때문에 옷을 입으면 자연스럽고 우아한 기품이 흐른다. 하지만 요즘 퓨전 한복 중엔 양복 만들 듯 암홀을 파서 어깨를 부풀리거나, 서양 드레스처럼 허리 뒤로 묶는 리본이 등장하는 게 많다. 치마 속에도 후프를 과도하게 넣어 드레스처럼 들떠 있고, 생경할 정도로 금ㆍ은박도 화려하다.

▦ 국적 불명의 퓨전이 범람하자, 한복의 아름다움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졌다. 급기야 종로구청은 최근 전통에서 크게 벗어난 퓨전 한복에 대해서는 고궁 무료 입장 등 한복 착용 혜택을 없애는 방안까지 거론하며 고궁 관리 부처인 문화재청과 협의 중이라고 한다. 한복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종로구청의 노력은 가상하다. 하지만 변형된 한복을 입었다고 고궁 무료 입장을 불허하는 건 한복 대중화에 찬물을 끼얹는 악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실을 인정하되, 대여점에 납품되는 한복의 품질 관리를 강화하는 식으로 개선 방안을 찾는 게 좋겠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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