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세심한 맛] <3> 토마토

토마토는 햇볕을 많이 쬐면 붉게 바뀐다. 게티이미지뱅크

심호흡을 한 번 깊게 하고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한참 흐른 뒤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겠다 싶은 시점에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햇볕을 많이 받은 듯한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고 생산하신 방울 흑토마토를 백화점에서 샀는데요, 껍질이 정말 너무 질겨서 먹기가 어렵더라고요. 궁금해서 전화를 드려 보았습니다.” “아, 그거요. 원래 그런 거에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산자와 통화를 시도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제는 웬만하면 그냥 넘어간다. 다 그렇지 뭐.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뿐더러 힘들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니 대화는 서로의 힘만 뺄 확률이 높다. 정말 ‘다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정말 물어나 보고 싶은 수준으로 토마토의 껍질이 질겼다. 동물도 아닌데 가죽인가 싶을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여느 곳도 아니고 백화점에 입점한 유기농품 전문점의 토마토였다. 그렇지만 ‘원래 그렇다’는데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한국은 물론 세계의 농작물 현실이 그렇고 토마토는 대표주자이며 원래 그런지도 꽤 오래 되었다. 이상적인 세계라면 토마토는 햇볕을 마음껏 머금어 터지기 직전에 수확 및 유통되어야 한다. 하지만 진짜로 터져버리기 쉬우므로 그러기가 어렵다. 토마토는 복숭아, 딸기와 더불어 파손되기 가장 쉬운 과채류이다.

아직 덜 익은 파란 토마토는 반죽을 입혀 튀겨 먹으면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단맛, 짠맛, 감칠맛 감도는 토마토

게다가 쓰임새마저 많아 수난을 많이 겪곤 한다. 채소로 분류되지만 과일이라 여길 수 있을 정도로 단맛, 짠맛, 가장 중요한 감칠맛을 두루 지녔다. 아삭함과 폭신함 사이를 오가는 질감도 이리저리 잘 어울린다. 덕분에 가장 세계화된 음식인 햄버거와 피자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으니, 옥수수, 콩, 커피 등과 더불어 원자재로 분류 및 거래 된다. 생물이지만 상품이니 그에 맞게 품종 개량 및 경작된다. 단단하게 개량된 품종을 수확 및 유통과정에서 견디도록 설익었을 때 따는 것이다. 소위 ‘후숙’은 일반적으로 에틸렌 가스가 맡는다. 토마토는 ‘맹탕’이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래서 오늘도 트럭은 익지 않아 파란 토마토를 잔뜩 싣고 골목을 누빈다. 보기만 해도 슬퍼지지만 이런 토마토마저도 쓰임새가 없지는 않다. 1991년 만들어진 영화 제목이자 요리의 이름인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두께 1㎝로 썰어 여느 튀김처럼 밀가루-계란(또는 버터밀크)-빵가루(또는 콘밀)의 순으로 옷을 입혀 튀기거나 지지기만 하면 된다. 바삭한 빵가루 껍데기와 살짝 익어 부드러워진 토마토의 질감 대조가 영화의 전반적인 정조처럼 낙관적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염소젖 치즈를 곁들이면 그 풀내음과 토마토 흙냄새가 어우러져 맛이 한층 더 깊어진다. 소비뇽 블랑처럼 신맛이 두드러지는 화이트 와인이나 로제 와인을 반주 삼으면 지금 아주 잠깐 존재하는 맑고도 뜨거운 초가을 날씨를 위한 음식으로 더 좋은 게 없다.

하지만 아무리 맛이 있다고 해도 파란 토마토를 평생 튀겨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일개 소비자가 바꿀 수 없는 거대한 토마토의 부조리에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만 하는 걸까? 일단 포기해야 한다. 내려 놓아야, 우리가 쉽게 살 수 있는 토마토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의 과채류 대부분은 생식, 즉 날로 먹기에 맞도록 품종 개량된 경향이 있다. 그런 가운데 물이 많지만 맛이 진하지 않다. 더불어 브릭스로 수치화되는 당도를 품질의 기준으로 삼으니 토마토도 예외가 아니다. 그 결과 과채류는 대체로 물이 많은 가운데 밍밍한 단맛이 감돈다. 그렇다고 대안으로 통하는 자연 수정, 소량 생산의 에어룸 토마토(heirloom tomato)를 쉽게 살 수 있는 현실도 아니다. 건강을 위한다 생각하고 맛없음을 좀 참으면서 생식 위주로 토마토를 먹는 게 속편하다.

피자나 파스타 등 이탈리아 음식에는 이탈리아산 토마토를 써야 제맛이 난다. 게티이미지뱅크.
진한 맛이 배어 나오는 익은 토마토

토마토로 부릴 수 있는 많은 욕심으로부터 자연스레 거리가 멀어지면 식생활의 부담을 한편 덜 수 있다. 토마토소스 말이다. 진정성과 결부되어 그런지 소위 ‘수제’가 각광 받는다. 모든 것을 직접 만드니 토마토 소스도 생토마토를 갈아 끓여야 할 것 같다. 원론적으로는 틀린 접근이 아니다. 실제로 괜찮은 토마토만 있다면 재미 삼아서라도 한 번쯤은 소스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게 나쁠 리 없다. 다만 결과가 괜찮지 않을 뿐이다. 갈고 끓이는 과정에서 토마토의 입맛 돋우는 빨간색이 썩 유쾌하지 않은 주황색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가는 과정에서 공기가 너무 개입해 산화로 인한 변색이 일어난다. 제대로 익힌 토마토를 거의 팔지 않으니 맛도 장담할 수 없다. 끓으면서 장점은 잦아들고 단점은 증폭되니 신맛이 두드러지고 떫거나 쓴맛도 돌 수 있다. 그래서 ‘이 맛이 아닌’ 무엇인가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내려 놓아야 한다. 다소 질긴 듯한 껍질을 이로 누르면 뿜어 나오는 과즙의 새콤함과 이후 딸려 오는 단맛 및 감칠맛을 느끼는 수준에서 생토마토를 향한 기대를 거두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 바로 익은 토마토의 세계이다. 한식에 맛을 들인 외국인이 된장국이나 고추장 찌개를 끓일 때 제 맛을 위해 국산 장류를 써 주었으면 하고 바라듯, 피자나 파스타 같은 이탈리아 음식에는 이왕이면 이탈리아산 토마토를 써야 제맛이 난다. 과연 무엇이 제 맛인가? 단단한 단맛 뒤로 짠맛이 살짝 감도는 가운데 다부진 감칠맛이 조화를 이루면 제 맛이다. 소스로 변해 익으면 한결 더 진해지는 맛이 나는, 화산재 토양에서 제철에 잘 익은 토마토를 깡통에 담아 익혔다. 덕분에 질긴 껍질도 비교적 깔끔하게 벗겨진 채로 뚜껑만 따서 바로 쓸 수 있도록 팔린다. 원래 이탈리아 토마토도 원산지 명칭 보호로 분류되지만 애써 찾아 쓸 필요는 없다. 마트 등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제품이라면 집에서 오랜 시간 뭉근히 생토마토를 끓인 것보다는 훨씬 맛있다. 게다가 요즘은 토양과 햇살 모두 좋다는 미국 캘리포니아산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구대륙의 명성을 바짝 따라 잡고 있으니 이탈리아산 대신 선택하더라도 맛의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통조림 토마토는 피자, 파스타, 주스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이 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통조림 토마토는 어떻게 쓰면 좋을까? 피자든 파스타든 소스를 만드는 경우라면 대체로 국물은 남겨두고 토마토의 과육만 쓴다. 푸드 프로세서 등으로 갈지만 손으로 으깨면 나름의 맛이 있다. 이미 익힌 제품이니만큼 신선함을 더 잃지 않도록 30분~1시간 이내로 끓이는 게 좋다. 참고로 250℃ 이상에서 굽는 이탈리아의 원조 마르게리타 피자 같은 경우는 오븐의 온도 자체가 너무 높으므로 통조림 토마토를 더 익히지 않고 갈아서만 쓰기도 한다. 한편 통조림의 국물은 전부 섞으면 맛이 옅어질 수 있으니 소스를 만들면서 수분을 보충하는 용도에 써도 좋고, 아니면 유리잔으로 옮겨 냉장고에 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마시면 특히 해장에 좋다. 블러디 매리 등, 서양식 해장 칵테일 등이 대체로 토마토의 단맛, 신맛, 감칠맛에 기대는 걸 생각해보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간을 하지 않은 토마토와 생모차렐라 치즈를 번갈아 담은 카프레제 샐러드. 게티이미지뱅크
생토마토 활용법

늘어놓고 나니 통조림 토마토를 너무 찬양한 것 같아 생토마토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튀겨 먹는 것도, 날 것으로 먹는 것도 한계가 있다. 중간쯤에 뭔가 장기적으로 토마토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모든 식재료를 살리는 소금의 힘을 빈다. 요즘 유행하는 ‘토마토 무침이’라는 재움 요리법과 접근 방식은 같다. 다만 오래 절일 필요가 없다. 물기가 많고 밍밍한 원재료를 소금에 너무 오래 절이면 맛이 수분과 함께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마토를 썰어 소금 한 두어 꼬집에 살짝, 30분 정도만 절인다. 일반적인 큰 토마토라면 1㎝ 두께로 가로로 썰어 깍둑 썰기하고, 방울토마토는 반 또는 4등분으로 가른다. 30분쯤 절여 수분이 웬만큼 빠지면 채로 받쳐 과육만 남긴다. 오이, 올리브, 페타 치즈 등과 함께 올리브기름으로 버무리면 지중해식 샐러드가, 묵은 빵을 깍뚝 썰어 함께 버무리면 판자넬라 샐러드가 된다. 한국에서는 간을 하지 않은 토마토와 생모차렐라 치즈를 번갈아 담고 달달한 발사믹 글레이즈를 끼얹은 것을 카프레제 샐러드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소금에 절인 토마토와 다소 백지 같은 맛의 생모차렐라 치즈를 함께 버무리면 훨씬 맛있다. 절인 토마토 국물은 짠맛과 신맛의 간을 맞추는데 쓸 수 있다.

그렇다면 한식에는 생토마토의 편입 가능성이 없을까? ‘어느 날, 소시지 김치찌개에 건망고를 썰어 넣었다’라는, 충격적인 첫 줄로 시작하는 한 신문기사를 읽고 맛의 가능성을 헤아려 보았다. 단맛이야 한식이 기본으로 가지고 있으니 망고와 김치의 신맛이 손을 맞잡으면 조화가 괜찮을 것이다. 게다가 소시지는 원래 열대과일과 잘 어울린다. ‘입맛 없던 팔순 노모가 “어떻게 끓였냐”며 밥 한 그릇을 비웠다’는 반응은 사실인지 허구인지 헤아릴 길이 없었지만, 같은 맥락에서 김치찌개 정도라면 토마토의 틈새는 있지 않을까.

통조림 토마토의 세계도 아주 다양하다. 일단 깍둑 썬 토마토가 있는데 소스나 수프 등에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다. 다만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염화칼슘을 첨가한 경우 익혀도 잘 뭉개지지 않을 수 있으니 성분표시를 확인한다. 한편 토마토 퓌레(puree)와 파사타(passata)는 껍질과 씨를 제외하고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전자는 대체로 익히고 후자는 익히지 않는다. 파사타가 좀 더 묽은 편이다. 둘 다 국내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데 익히지 않은 파사타가 더 신선하다. 파사타는 유리병에 담겨 팔리니 쉽게 구분할 수 있다. 토마토 페이스트는 오래 끓여 마치 고추장과 흡사한 질감을 지녔으며, 맛이 강하게 농축되어 보통의 토마토 맛에 소량으로 한층 더 진한 맛의 켜를 깔아주고자 할 때 쓴다. 통조림보다 튜브에 든 제품이 두고 쓰기 편하다.

질긴 토마토 껍질을 제거하려면 끓는 물에 살짝 데치면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질긴 토마토 껍질 제거법

비단 생산자에게 전화를 걸 정도는 아니더라도 토마토 껍질은 기본적으로 질기다. 서양 요리에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껍질을 벗긴 토마토를 다지듯 깍둑 썰어 쓰는 ‘콩카세(Concasse)’라는 조리법이 따로 있을 정도다. 이렇게 껍질이 질긴 토마토는 일반 식도나 과도보다는 날이 깔쭉깔쭉한 빵칼이나 스테이크용 나이프로 써는 게 훨씬 편하다. 껍질 바로 밑의 연약한 과육이 날에 눌려 뭉개지지 않고 가볍게 쓱쓱 썰린다.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토요일 격주로 식재료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은 아무도 몰랐던, 식재료를 제대로 대하는 법을 통해 음식의 기본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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