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는 1991년 독립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다 소련군에 살해당한 14명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다. 이 근처에는 요나스 노레이카를 추모하는 기념비도 서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1939년 요나스 노레이카의 사진. 위키피디아

‘베트라(폭풍) 장군’, 요나스 노레이카(1910~1947)는 동유럽 리투아니아에서 소련 지배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펼친 영웅이다. 구소련 치하 리투아니아에서 저항단체를 이끌다 37세에 소련 정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에 붙잡혀 죽음을 당했다. 1991년 독립한 리투아니아는 1997년 노레이카에게 대통령 훈장인 비티스 십자장을 추서했다. 수도 빌뉴스 도심 게디미나스 대로에 있는 제노사이드 희생자 박물관 벽면에 새겨진 희생자 이름 가운데 그의 이름도 있다.

하지만 노레이카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노레이카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동조해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동참했다는 주장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10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현재 이 주장을 펼치는 이들 가운데에는 놀랍게도 노레이카의 외손녀가 속해 있다.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실비아 포티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외할아버지가 영웅이 아니라 나치에 동참한 살인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충격이었다. 들은 적이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노레이카가 유대인 학살을 저질렀다는 주장 자체는 리투아니아 내에서는 꽤 유명하다. 유대계 리투아니아인 공동체에 따르면 노레이카는 리투아니아가 1941년 나치 독일에 병합된 후 1943년까지 나치를 지지하면서 유대인 학살에 동참했다. 특히 1941년 서부 플렁게에서는 유대인 1,800명 이상이 죽었는데 이들을 학살한 주체는 독일인이 아니라 나치에 동조한 리투아니아인이었다. 포티에 따르면 노레이카는 플렁게에서 직접 유대인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 명령 전달에 관여한 ‘탁상 살인자’였다.

리투아니아 국책연구소인 ‘제노사이드저항연구소’는 노레이카가 나치와 소련 양쪽의 지배에 모두 저항했으며, 유대인 학살에 책임이 없다고 결론지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자국민이 유대인 학살에 동조한 어두운 과거를 철저히 교육하는 국가로 손꼽힌다. 그럼에도 노레이카가 유대인 학살에 관여했다는 주장은 ‘영웅 만들기’를 위해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있다고 연구자들은 주장한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그랜트 고친은 “리투아니아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국가 서사를 구성했고, 그 서사를 제 손으로 무너트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노레이카를 둘러싼 논쟁은 리투아니아와 우크라이나 등 반(反)러시아 정권을 공격하는 러시아 선전매체들의 먹잇감이 됐다. 소련이 독일과의 전쟁에서 동유럽을 해방했고, 소련에 저항한 민족주의자들은 사실 나치에 부역했다는 내용이다. 홀로코스트 전문가 도비트 카츠는 “러시아의 선전에 대응하는 옳은 방법은 범죄와 독립운동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그런 길 대신 자기방어를 위해 역사를 부정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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