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그날은 유독 습하고 더운 날이었다. 마을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꽤 가파르고 복잡해 출퇴근 시간이 아니어도 정류장마다 사람이 한가득하다. 이미 사람으로 북새통인 버스, 꾸역꾸역 사람들이 더 밀고 들어온 정류장. 더 탈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사람으로 들어찬 버스 안이 답답해 출입문 쪽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10cm 남짓 덜 닫힌 출입문이었다. 문이 고장 났나? 하고 보니 고사리만 한 어린이 팔 하나가 끼어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식은땀과 함께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다. “기사님! 문! 문! 열어요! 빨리! 아기!” 거의 아우성에 가까운 비명. 정류장에서 어른들에 밀려 맨 마지막에 타려던 어린이의 팔뚝이었다. 앞을 막아선 어른들의 키 때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손잡이를 잡은 찰나, 그 장면을 보지 못한 기사는 문을 닫고 출발하려 했고, 그대로 팔이 끼었던 거다. 20여년 전, 사촌 동생 중에 그 상태로 차가 출발해 끌려가 즉사한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 악을 쓰는 듯한 비명을 고래고래 질렀다.

다행히 비명에 놀란 기사분은 출발하지 않고 문을 열었고, 나는 정신없이 뛰어나갔다. 팔이 끼었던 아이는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커다란 두 눈이 깜빡이지도 못한 채로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아이를 안아 내 자리에 앉히고 끼인 부위를 호호 불어주면서 달랜 뒤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응 괜찮아. 몇 살? 일곱 살이라고? 역시 그랬던 거구나! 다 큰 유치원 왕언니라서 울지 않았던 거네. 우와 정말 대단한걸? 짱이야.” 아이가 울 틈이 생길세라 온갖 말로 겨우겨우 어르며 집에 도착했을 때쯤, 내 손을 놓고 할머니의 품에 안기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 얼마나 놀랐을까. 혼비백산이 된 할머니에게 크게 다치진 않았을 거라고, 너무 심려치 마시라고 일부러 덤덤한 표정으로 웃어드렸건만, 문을 닫고 돌아서자마자 진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사고는 생각지 못한 순간, 생각지 못한 부주의에서 일어난다. 이 글로 해당 기사분에게 피해가 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가 보아도 사각지대였다. 아이의 키는 110cm 남짓, 먼저 탑승하려 몰려온 어른 수는 8명이 족히 넘었다. 기사의 부주의를 탓하기보다는 앞문 끼임 방지 센서라도 달아놓았더라면 될 일이었다.

2015년 5월, 서울시는 저상버스 내부 편의 사항 개선 연구용역 시행을 시작으로 앞문 끼임 방지 센서 설치 차량 개발 및 양산을 지난 2년여에 걸쳐 진행해 왔다. 그 결과 2017년 1월부터 일반 버스 529대, 2018년 1월부터 저상버스 166대가 끼임 방지 센서 설치 차량으로 확충되었다. 앞으로도 설치작업이 진행되겠지만 이는 전체 서울시 버스의 약 10% 선이다. 향후 점진적으로 서울 시내버스 전체에 도입될 예정이라고는 하나, 노후로 인한 신규 차량 교체를 통해 센서가 확충되므로 그 시간은 꽤 길 수밖에 없다.

머지않은 시기에 버스 안전사고는 분명히 줄어들겠지만, 그동안이라도 작은 시민 에티켓으로 사고 위험을 더욱 줄여 나가는 데 우리가 힘을 보태 보는 것은 어떨까. 버스를 타고 내릴 때, 혼자 탑승하는 어린이가 있다면 성인 승객들이 그 아이를 먼저 상하차시켜 주는 작은 습관을 캠페인화하는 거다. 아이는 합법적 새치기 대상이라는 느낌으로 유쾌하게 풀어 나가 보는 슬로건을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놀랐던 아이의 얼굴만큼이나, 고사리 같던 팔뚝이 생생하다. 몇 주가 지난 지금, 아이는 그 순간의 공포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을까. 버스를 타려다 멈칫하고 먼 오르막을 걷고 있지는 않을까. 부디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기를 기도해 본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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