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침쇼크 환자 진료한 의사 등에
유가족 9억대 손배소 걸자 발끈
의협, 한방 부작용 무개입 선언

“선한 사마리아인 억울함만 강조
환자 볼모로 직역 다툼하나” 비판
대한의사협회 제공

대한의사협회가 한방진료로 인해 발생하는 그 어떤 상황에도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봉침 쇼크 환자에게 응급 진료를 행한 의사를 유가족이 고발하자 발끈하며 그 책임을 한방진료 쪽에 묻고 나선 것이다.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볼모로 직역 다툼에 나선 것이어서 직업윤리를 저버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의협은 10일 오전 서울 용산 임시 의협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한방사고 무개입’을 선언했다. 의협은 “한의원에서 봉독약침으로 응급상황에 빠진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응급치료를 시행한 의사에게 돌아온 것은 감사 인사가 아니라 9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였다”며 “의사의 선한 의지가 보호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사에게 주어진 책무만을 강요할 수 없어, 의협 소속 전국의 모든 의사들은 한방 행위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한 상황에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의협은 “한방을 이용하시는 환자분들은 이 점을 유념하고 한방을 선택하셔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자들에게 한방 진료를 택했다가 위급한 상황이 되면 양방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테니 이용하지 말라고 사실상 협박을 하고 나선 셈이다.

의협이 언급한 환자사망사건은 지난 5월 부천의 모 한의원에서 발생한 봉침 사망 사건이다. 당시 한의사에게 봉침치료를 받던 여교사 A(38)씨에게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발생하자 한의사는 같은 층에 있는 가정의학과 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해당의사는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실시했지만 119구급대에 의해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A씨는 6월 초 사망했다. A씨의 유족들은 7월 A씨의 사망책임을 물어 한의사뿐 아니라 응급처치를 실시한 의사에게까지 9억원대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의사를 대표하는 단체가 생명이 위급한 환자라도 ‘한의사의 진료를 받았다면 모른체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은 의사로서 직업 윤리를 저버린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과 교수는 “의협의 주장처럼 한의사의 요청이 있어도 의사가 요청에 응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면서도 “의사가 응급처치를 하다가 혹시 과실을 범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데 의협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억울함만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행 응급의료법에서는 의료인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해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민ㆍ형사상 책임을 면제 또는 감면한다. 결국 사고가 한의원에서 발생했을 뿐이지 일반적인 응급상황과 다를 것이 없고, 과실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질 텐데 의협 측이 ‘한의사’를 내세워 논점을 흐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의사의 중대과실 문제는 법원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하면 드러날 수 있다”며 “사망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한 것은 그만큼 의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의사사회 일부에서도 이번 의협의 ‘한방사고 무개입’ 선언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선의의 진료에 대한 문제는 사회적으로 책임을 지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며 “의협은 전문가단체로서 진료거부 등을 통한 선언, 선동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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