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108배 운동 체험기

108배 운동 이미지. 인터넷 캡처

일상의 피곤은 삶을 잠식한다. 공부에 뜻을 잃은 아들을 위해 하루 1,000배(拜)도 마다치 않으셨던 ‘불심(佛心) 충만’ 어머니의 자식이건만, 기자에게 하루 108배는 마음의 원(願)일 뿐이었다. 취업, 결혼, 출산 등 중요한 생의 주기가 들이닥칠 땐 어김없이 절집을 찾아 그간의 삶을 반성하고 108배를 드렸지만 그 때뿐, 이내 사는 것에 치여 다짐을 잊었다. 아버지의 병환, 부족한 가장(家長)이라는 절감 등으로 마음에 제법 깊은 생채기가 났을 때도 108배는 닷새를 넘지 못했다. “밥 벌어먹고 살다 보니 108배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는 변명은 일상이 됐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중순. 언제나처럼 취재원과의 저녁 자리를 마치고 자정 무렵 귀가해 샤워를 했다. 이상할 정도로 피곤하고, 일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돌파할 의욕도 나지 않는 나날이었다. 습기가 가신 전신 거울에 얼굴과 몸이 드러났다. 원래부터 그런 양 얼굴을 부어있고 배는 돋보였다. “넌 왜 이렇게 배만 나오고 팔다리는 날렵하냐. 이건 뭐 ET도 아니고. 셔츠 단추 발사되겠다, 야.” 1년 만에 만난 업계 선배가 했던 말이 오버랩 됐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종교적 의무로 무겁게 접근하지 말자. 일상에 질 게 뻔하다. 이번엔 108배를 순수하게 운동으로 시작해보자.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D-5~D-Day, 즙 짜듯 흐르는 땀, 육체의 빈 곳이 느껴지다

8월25일(토). 108배 첫날. 스마트폰을 들고 마음 속 급한 불을 진화할 때 종종 쓰던 ‘중년 마음 거울’ 어플리케이션(앱)을 켰다. 절 한 번 할 때마다 108개 염주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넘기던 시절을 지나, 일명 ‘째깍이’(절 한 번 할 때 손으로 눌러 수치를 세는 기계) 시대도 지나, 바야흐로 모바일 시대 아니던가. 앱에서 절 속도를 설정하고 물 소리 배경을 선택한다. 그러면 절 한 번당 좋은 문구 하나가 낭독되고 종 소리가 울린다. 108번 좋은 말을 들으며 108번 앉았다 일어서는 데 40분쯤 걸렸다.

이 정도면 아주 느긋한 속도다. 그러나 이미 ET와 같은 신체 변형으로 균형을 잃은 몸은 뒤뚱대고, 고정돼 있어야 할 발의 위치는 자꾸 왔다갔다한다. 30배를 했을 무렵 허리가 뻐근하고 땀이 맺혔다. 47배를 넘어갈 땐 주체 못할 땀이 머리를 흠뻑 적시고 가슴팍에 흘러내렸다. 108배의 절반을 넘기 전에 옷은 이미 푹 젖었다. 운동 좋아하던 20대 때 75kg 전후를 오갔던 몸이 20여 년의 과다한 음주로 86kg을 넘어섰으니 약간의 몸놀림에도 진땀으로 흥건한 건 당연한 일이리라. 제대로 자세를 잡는데 신경 쓰다 보니 어느새 108배가 끝이 났다.

이런 날들이 5일 더 이어졌다. 직업 특성상 저녁 늦게 일이 끝나고 밤시간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다 보니 아침이 힘든 나다. 자연히 밤에 108배를 드릴 수 밖에 없는데, 하필 이 무렵 한국은 기록적 폭염과 열대야 속에 있었다. 매일 밤 착즙기에 넣은 과일처럼 엄청난 땀을 쏟아 냈다. 내 몸에 이렇게 많은 수분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다행인 건, 무념무상으로 지나간 첫날과 달리 점점 몸의 구석구석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절하는 과정에서 몸을 굽혔다 펴면 방만했던 장기가 제자리를 찾아 밀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늘던 다리엔 근육 덩어리가 생겼는지 걸을 때마다 찰랑대는 리듬이 전해졌다. 잠이 잘 들고 꿈이 없어지면서 아침에 눈뜨기가 편해지기 시작했다.

D+5, 몸은 변해가고 머리엔 다이어리 기능 추가

5일뿐이지만 몸이 변했다. 와이프도 못 알아챌 미세한 차이겠지만, 몸이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느낌이 완연했다. 다리는 몸을 제대로 지탱했고, 항상 더부룩했던 배가 덜 불편해졌다. 고질처럼 여겨지던 허리의 뻐근함도 덜했다.

8월30일(목). 내 개인적 도전이 기사화되기로 결정됐다. 독자들에게 실감나게 체험을 전하기 위해 이날을 D-Day로 정하고 체중과 허리둘레, 소모 열량을 매일 재기로 했다. 더불어 정들었던 ‘중년 마음 거울’ 대신 ‘108배 운동’ 앱을 새로 깔았다. 운동 전용 앱이라 작동 방식이 더 심플하다. 한 배 당 간격을 초 단위로 설정하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시간이 찼을 때 알람이 울린다. 이에 따라 운동 방식도 삶의 격언을 경청하며 108배를 채워가던 예전과 달리, 고요함 속에서 108에서 1로 줄어드는 숫자를 도반(道伴ㆍ함께 도를 닦는 벗) 삼아 절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절 한 번에 15초, 108배를 27분 안에 마치도록 세팅했다. 이전보다 속도를 높이긴 했지만 크게 다르랴 했는데, 심히 달랐다. 20배를 넘어설 무렵부터 땀이 쏟아지더니, 50배를 넘어섰을 땐 이전 108배 때 흘린 땀의 총량에 근접한 느낌이었다. 체감상 운동효과가 족히 2배는 됐다. 운동 첫날처럼 몸을 접었다 펴는 데만 신경 쓰느라 생각이란 것을 할 수가 없었다.

D+2(9월1일ㆍ토). 허리께의 묵직한 느낌이 사라지고 다리는 찰랑거림 없이 제법 단단해졌다. 병든 닭처럼 출근해 커피로 정신을 깨우던 내게 또렷한 눈빛이란 게 있었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 속도를 높인 108배도 한결 수월해져 40배를 지날 무렵 오늘 하루를 되짚어보는 여유까지 부렸다. D+4(9월3일ㆍ월) 108배 도중에는 평소 파편처럼 맥락 없이 흩어지곤 하던 사색들이 마치 일기 쓰듯이 한데 모여 정리되는 경험을 했다. 대단한 성찰은 아니고 “그때 화내지 말 걸” 하고 반성하는 정도이긴 했어도, 머릿속에 다이어리가 펼쳐진 듯한 느낌이 참 좋았다. 잠자리에 드러눕는 순간엔 “오늘 하루 잘 살았다”는 좋은 마음이 스몄다. 흠뻑 흘린 땀을 씻어낸 상쾌함은 덤이었다.

9월4일 108배 운동 기록. 12초로 절 간격을 줄이자 운동 시간은 21분대로 줄었지만 소모 열량은 오히려 129kcal로 줄었다.
9월5일 108배 기록. 다시 절 간격을 15초로 바꾸니 소모 열량이 162kcal로 늘었다.
D+10, 내 얼굴이 느껴지고 스케줄러까지 펼쳐지다

뭐든 오버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D+5(9월4일ㆍ화). “절 한 번에 15초는 길지 않나. 명색이 운동인데 12초로 줄여 보자.” 그렇게 시작한 그날의 108배는 지옥 문을 열었다. 그날도 취재원과 간단한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고 귀가했던 터다. 특별히 힘든 일도 없는 날이었건만, 숨이 턱밑에 차고 넘쳐 급기야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자존심은 있어 도로 속도를 줄이긴 싫었다. 얼마나 헉헉 댔던지, 안방에서 곤히 자던 와이프가 깨서 “한밤에 뭐 하는 거냐”고 타박을 줬다. 108배를 끝내니 상쾌함이나 사색은 개뿔, 허리와 다리의 묵직함이 몇 곱절로 되살아났다. 내 평생 가장 많은 땀이 분출된 것은 물론이다.

다음날 즉시 15초로 절 간격을 수정했다. 불행을 체험하면 평범한 일상이 더 행복해진다고 했던가. 개운한 리듬감과 사색이 되돌아왔다. 역설적인 것은 여유를 찾자 운동량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이었다. 12초 간격일 땐 총 운동시간(21분)이 짧아지면서 129kcal가 소모되는 데 그쳤지만, 15초 간격에선 162kcal가 소모됐다. “절은 자신의 리듬에 맞춰 차분히 해야 몸의 모든 근육이 쓰여 운동 효과가 배가 되고 몸에 무리도 가지 않는다”고 했던 울산 법륜사 주지 성윤 스님의 충고는 정답이었다.

D+7(9월6일ㆍ목)이 되자 70배에 도달할 무렵 내일을 생각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다이어리를 넘어 스케줄러까지 머릿속에 펼쳐지는 마법이라니. 마침 다음날은 금요일 비번이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하원하기 전 처리해야 할 밀린 취재 일정을 정리했고, 꼭 보고 싶은 영화도 떠올렸다. 영화는 못 봤지만 바지런히 금요일을 보내고 아들과 즐겁게 놀아 준 그날, 108배를 못했다. 아들을 안고 기절하듯 잠든 것이다.

하루 108배를 안 했을 뿐인데, 토요일 내내 찜찜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아무도 검사하지 않은 숙제인데 죄책감까지 밀려왔다. 조용한 사색과 적당한 땀, 이후 자연스레 찾아오는 상쾌함과 내적 포만감이 그립게 떠올랐다. 건너뛴 시간의 보복인지, 그날 밤 재개된 108배는 퍽퍽했다. 배가 좀 더 접혔고, 몸이 덜 유연했고, 다이어리 기능에서 스케줄러 기능으로 전환도 더뎠다.

D+10(9월9일). 전날보다 한결 편안한 108배였다. 어느 순간 내 얼굴 표정도 느껴졌다. “진지해지면 아래 턱을 앞으로 내빼는 버릇이 있었구나” 입을 다소곳하게 오므리고 표정을 좀 더 풀어 보았다. 배는 눈으로 봐도 제법 많이 들어갔다. 허리둘레 36.3인치. 108배를 시작할 때보다 3.4인치 줄었다. 체중은 82.3kg. 이 역시 4.2kg이 빠진 수치다. 마흔네 번째 절을 할 때 문득 ‘중년 마음 거울’이 44배 때 어김없이 들려주던 구절이 떠올랐다. “얼굴에 그늘을 만들지 않고 마음에 어둠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88배 구절이 그 말을 받았다. “건강에 해로운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들이겠습니다” 선인들의 격언이 제때 떠오르는 것을 보니 이제 외계인 ET 수준은 벗어났나 보다. 일상의 피곤까지 완전히 떨쳐내긴 어려울지 몰라도 통상의 인간 영역에는 들어온 듯하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관련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