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1년 오늘 '잉카의 영웅' 미치마롱코가 스페인 정복자들의 식민도시를 점령했다.

미치마롱코(Michimalonco)는 칠레 원주민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나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에서 교육받은 엘리트 전사로, 스페인 침략자들에 맞선 저항의 영웅이다.

잉카제국을 장악한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스페인 점령군은 부관 페드로 데 발디비아를 앞세워 오늘날의 칠레로 남진(南進), 산타루시아 기슭에 교두보 격의 첫 도시인 ‘산티아고 데 누에바 엑스트레마두라’를 건설했다. 원주민 저항은 처음부터 산발적으로 이어졌다. 진압 작전을 위해 발디비아가 군대 일부를 이끌고 ‘산티아고’를 잠시 비운 1541년 9월 11일, 미치마롱코는 부족민 8,000명을 이끌고 마을을 공격, 파죽지세로 백인들을 몰아내며 마을을 거의 점령했다. 궁지에 몰린 점령군은 볼모로 잡고 있던 부족장 7명을 방패 삼아 저항했다.

정복자의 역사는 저 대목에서, 사기가 땅에 떨어져 공포에 떨던 스페인군을 독려해 전세를 역전시킨, 발디비아의 연인이자 영웅 이네스 데 수아레즈(Ines de Suarez, 1507~1580)를 등장시킨다. 식민지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의 아내였던 수아레즈는 스페인 정부의 ‘엔코미엔다(encomienda))’, 즉 식민지에서 ‘선주민을 보호하고 기독교로 교화’하는 대신 세금을 걷고 강제노역을 시킬 수 있는 권리를 얻어 쿠스코로 건너왔다. 그는 당시 유부남이던 발디비아의 연인이 됐고, ‘순애보’에 기록될 만한 사랑으로 발디비아의 가정부 지위로 파견군과 동행했다고 한다.

수아레즈는 군 지휘부를 압박해, 방패처럼 이용하던 인질들의 목을 제 손으로 베어 미치마롱코 진영으로 던지더니 직접 흰 말에 올라, ‘오를레앙의 성녀’처럼, 군을 이끌고 적을 섬멸했다고 한다. 미치마롱코는 도주해 2년여간 숨어 지내다 스페인군에 투항했다. 칠레의 민중서사는 그의 전사(前史)를 주로 기리는 듯하다. 하지만, 그가 칠레 남부 마푸체 부족 침략ㆍ복속에 앞장섬으로써 로마제국 이후 동서 열강의 식민지 제국 지배전략인 피지배민족 ‘분리-통치’(以夷制夷ㆍ이이제이)의 전형적인 선례를 남겼다는 설도 있다.

지난 1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미 순방 일정에 칠레 남부 비오비오강 인근 마푸체 족 보호구역(거주제한구역)을 방문한 것은 500년이 넘도록 독립의 여망을 품고 사는 그들의 처지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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