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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기둥 기울고 추가 균열… 사고 이틀 전 붕괴조짐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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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기둥 기울고 추가 균열… 사고 이틀 전 붕괴조짐 뚜렷

입력
2018.09.09 18:44
수정
2018.09.1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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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징후 포착 긴급 점검 요청에

구청 “다른 민원 처리 하는 중”

유치원의 건물 안전진단 요청에

교육청 “예산 없어 어렵다” 거절

균열 확장 등 사고 위험 알면서도

유치원, 사고 당일까지 등원 시켜

서울 동작구 서울상도유치원이 지반 불안으로 기울어지는 사고가 난 지 나흘째인 9일 오후 관계자들이 철거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동작구 서울상도유치원이 지반 불안으로 기울어지는 사고가 난 지 나흘째인 9일 오후 관계자들이 철거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밤 굉음과 함께 건물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발전 패널은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3층짜리 건물을 지탱하던 필로티(건물을 떠받치는 기둥)는 엿가락처럼 휘었다. 10도 넘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 그 곳에서는 사고가 일어나기 불과 3시간 전까지만 해도 수십명 유치원생들이 방과 후 오후 수업을 듣고 있었다.

아찔했던 이번 사고는 예상치 못한 돌발 사태가 아니라 관할구청과 교육 당국, 유치원의 잘못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인재(人災)였다. 이미 지난 3월부터 붕괴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제기됐음에도 안전 관리 책임이 있는 이들은 현장을 점검하는 등의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붕괴 이틀 전인 4일부터 전조가 뚜렷하게 나타났음에도 구청 등은 무사안일한 태도로 일관했다. 앞서 8월 22일 유치원 옹벽에 30mm 정도 균열이 발견된 뒤 2주 정도 시간이 지나 건물 안팎에서는 기둥 등 20여 곳에 달하는 곳에서 추가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있었던 30mm 균열은 70mm까지 벌어졌다. 옹벽 기둥 끝도 눈에 띄게 기울어지고 무엇보다 건물을 받치는 필로티 기둥도 기울고 균열이 생기는 등 곳곳에서 뚜렷한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었다. 유치원 측이 5일 이런 붕괴 징조들을 담아 긴급 현장 점검을 요청하는 공문을 동작구청 건축과로 접수한 것도 막연하나마 심각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청 관계자는 “담당자가 (사전에 접수된 다른) 민원 처리를 하고 있어 현장에는 미처 나가지 못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구청에 공문을 보낸 유치원은 같은 날 자체적인 긴급 대책회의도 열었지만 정작 구청 담당자는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를 들면서 불참했다. 다음날인 6일이 돼서야 ‘현장을 확인해 안전조치를 실시하고 결과를 통보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시공사 등에 보낸 게 구청이 ‘긴급하다’는 유치원이 보낸 요청에 대한 응답이었다. 한 유치원 학부모는 “사고가 난 날에도 한 학부모가 ‘금 간 것 심해 어쩌냐’고 답답하다는 듯 유치원에서 말했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정말 무너졌다”고 했다.

구청의 실기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앞서 유치원은 올 2월 건물 하부를 지탱하는 옹벽 바로 아래 다세대주택을 건축하는 공사가 시작되자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에게 안정성 여부를 묻는 자문 의뢰를 했다. 이 교수는 현장답사를 나가 ‘붕괴될 위험성이 높은 지반’이라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유치원과 구청에 전달했지만 사실상 무시됐다.

구청의 안일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싱크홀(땅 꺼짐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2018년 1월18일부터 지하안전관리에관한특별법이 새로 적용되면서 지하안전영향평가가 의무화됐지만 구청은 해당 공사 인허가가 하루 전인 같은 달 17일 접수된 것이라며 고려에 넣지도 않았다.

구청이 이 교수로부터 받은 자문 의견서를 공사 감독 업무를 하는 감리사에게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건축법상 감리업체는 시공사가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 ‘공사중지 요청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구청 관계자는 “공문이 왔던 4월 2일에는 감리자 선정이 안돼있었다”고 했지만, 자문서가 제대로 전달됐다면 감리사에 의해 공사가 중단될 수도 있었다.

교육청은 정밀 안전진단 기회를 놓치는데 일조했다. 유치원의 안전진단 예산 요청에 ‘예산이 없다’며 거절한 것이다. ‘제24회 서울상도유치원운영위원회(긴급)’ 문건(5월 25일자)에 따르면, 공사로 인한 안전문제가 언급되는 가운데 “유치원의 건물 안전진단을 의뢰하니 1,800만원이라는 예산이 들어가 구청과 교육청에 요청했지만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치원 측은 어쩔 수 없이 자기 돈으로 자체 안전진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붕괴 전 유치원 측의 대처도 의문으로 남는다. 균열 확장 등 사고 위험성이 더 심각해졌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원생들을 그대로 등원시킨 것이다. 사고 당일 유치원 정원 122명 중 117명이 정상적으로 유치원에 나와 오후 1시 30분쯤 59명이 귀가했고, 나머지 일부는 방과 후 수업을 받은 뒤 오후 8시까지 건물에 머물러 있었다. 붕괴는 3시간 반 뒤에 일어났다.

구청은 9일 오후 2시 15분쯤 건물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앞선 언론 브리핑에서는 “깊은 사과를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공사장 바로 맞은편에 사는 모순례(60)씨는 “그날 건물이 털썩털썩 내려앉던 장면은 지금도 무서워 잊혀지지 않아 매일 밤 진정제를 먹고 있다”며 불안을 호소했다.

경찰은 공사 과정에서 구청과 시공사 등이 안전 의무를 다했는지 등에 대해 내사에 들어갔다. 동작경찰서는 “구청과 시공사에 지질검사와 안전영향평가서 등 관련 서류 제출을 요청했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가 발견되면 정식 수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상도유치원과 인접한 상도초등학교는 유치원 건물 철거 작업에 따른 소음과 분진이 심해 수업에 지장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10일 하루 임시휴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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